14세기, 잉글랜드의 국왕 에드워드 3세가 자신이 프랑스의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왕관을 둘러싼 싸움이 아니라, 아키텐처럼 부유하고 넓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갈등이기도 했습니다. 잉글랜드군은 무서운 신무기인 장궁을 앞세워 프랑스를 침공했습니다. 장궁은 당시 프랑스군의 주력 무기였던 석궁보다 훨씬 강력했습니다. 사람 키만 한 1.8미터의 거대한 크기 덕분에 화살을 멀리 날려 보낼 수 있는 강한 위력을 지녔고, 기계 장치를 돌려 장전하느라 1분에 1~2발 쏘는 데 그쳤던 석궁과 달리 오랜 훈련을 받은 궁수가 온몸의 근육을 이용해 직접 활시위를 당겨 1분에 무려 10~12발을 쏠 수 있었습니다. 크레시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은 쏟아지는 비처럼 화살을 퍼부어 무거운 갑옷을 입은 프랑스의 유명한 기사들을 가볍게 쓰러뜨리며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또한 잉글랜드군은 프랑스의 힘을 빼놓기 위해 '슈보시'라는 전술을 써서 마을과 농경지를 불태우며 잔혹하게 약탈했습니다.
끔찍한 전염병인 흑사병이 돌면서 전쟁이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싸움은 수십 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잉글랜드 왕의 아들인 흑태자 에드워드는 푸아티에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며 심지어 프랑스 국왕 장 2세를 포로로 잡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장 2세는 수많은 프랑스 귀족들이 도망치는 와중에도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 가장 최전선에서 도끼를 휘두르며 끝까지 싸우다 겹겹이 포위되어 잡히고 말았습니다. 장 2세는 영국으로 끌려갔다가 엄청난 몸값을 내기로 약속하고 자신을 대신해 아들을 인질로 남겨둔 채 잠시 프랑스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돈을 구하지 못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질이었던 아들마저 몰래 영국에서 도망쳐버렸습니다. 기사로서의 약속과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장 2세는 이를 큰 수치로 여겨, 스스로 다시 잉글랜드 감옥으로 걸어 들어가 명예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곳에서 병들어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한편, 프랑스는 왕이 없는 혼란 속에서도 정면 대결을 피하고 치고 빠지는 전술로 잃어버린 땅을 조금씩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잉글랜드의 헨리 5세가 다시 대대적인 침공을 시작했습니다. 전설적인 아쟁쿠르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은 진흙탕 지형을 이용해 압도적인 숫자의 프랑스 대군을 무찌르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국왕이었던 샤를 6세는 심각한 정신병을 앓고 있어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헨리 5세는 이 혼란을 틈타 아픈 샤를 6세를 압박하여, 그의 친아들(도팽 샤를) 대신 헨리 5세 자신을 프랑스의 다음 왕위 계승자로 임명하는 굴욕적인 '트루아 조약'을 강제로 맺게 만들었습니다.
프랑스가 이대로 잉글랜드의 손에 넘어가는 듯했던 가장 어두운 순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잔다르크라는 이름의 어린 시골 소녀가 나타나 자신이 나라를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녀는 절망에 빠져 있던 프랑스 병사들에게 엄청난 용기를 불어넣었고, 오를레앙 포위전에서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내며 전쟁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승리의 기세를 몬 잔다르크는 프랑스 왕들의 전통적인 대관식 장소이자 당시 적의 영토 깊숙이 있던 '랭스 대성당' 지역까지 진격해 수복하는 데 성공합니다. 덕분에 왕위를 잃고 숨어 지내던 도팽 샤를은 랭스 대성당에서 정식으로 왕관을 쓰고 '샤를 7세'로 즉위하며 프랑스의 진정한 왕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후 잔다르크는 적에게 붙잡혀 화형을 당했지만, 그녀가 피운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프랑스군은 갈수록 강해졌고, 대포라는 새롭고 강력 무기를 전쟁터에 본격적으로 도입했습니다.
마침내 1453년, 두 나라는 카스티용 전투에서 마지막으로 맞붙었습니다. 이번에는 전쟁 역사상 처음으로 대포를 대규모 야전(들판 전투)에 활용한 프랑스군이 잉글랜드군을 궤멸시켰습니다. 프랑스군은 튼튼한 흙벽을 쌓고 그 위에 300문이 넘는 크고 작은 대포들을 촘촘하게 배치해 거대한 방어 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잉글랜드군이 방심하여 무작정 돌격해 오도록 유인한 뒤, 사정거리에 들어오자마자 엄청난 수의 대포를 한꺼번에 발사하여 적군을 말 그대로 산산조각 냈습니다. 무려 116년 동안 이어진 백년전쟁은 잉글랜드가 칼레를 제외한 대륙의 영토를 모두 잃으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이 전쟁은 수많은 희생을 낳았지만, 동시에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전쟁 초반 잉글랜드의 '장궁'이 무적이라 믿었던 기사들의 갑옷을 뚫어버렸고, 전쟁 후반 프랑스의 '대포'가 높고 튼튼한 귀족들의 성벽을 무너뜨렸습니다. 개인의 무술보다 무기와 전술이 중요해지면서 중세의 상징이었던 기사의 시대는 저물었습니다. 게다가 엄청난 돈이 드는 대포와 상비군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국왕뿐이었기에 귀족들의 힘은 약해지고 국왕의 힘이 아주 강력해졌습니다. 길고 잔혹했던 싸움을 겪으며 잉글랜드와 프랑스 두 나라 사람들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처음으로 강한 '국가 의식'으로 똘똘 뭉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백년전쟁이 끝난 바로 그 해인 1453년, 동유럽에서는 천 년을 이어온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이 오스만 제국의 거대한 대포 공격에 무너지고 맙니다. 역사학자들은 1453년에 일어난 이 두 거대한 사건을 기점으로 기사와 성의 시대였던 '중세'가 완전히 끝이 나고,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대(근세)가 막을 올렸다고 평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