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예는 276년 서진의 황족인 낭야왕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서진은 황족들 간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인 '팔왕의 난'으로 크게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311년 북방 유목민 부족들의 침공으로 수도 낙양이 함락되는 영가의 난(Disaster of Yongjia)이 일어나면서 황제가 사로잡히고 나라는 멸망의 위기에 몰렸습니다. 이에 사마예는 군사적 충돌을 피해 일찍이 자신의 영지인 낭야를 떠나 양쯔강 이남의 건강(오늘날의 난징)으로 처소를 옮겨 힘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서진 왕조가 완전히 멸망하자, 사마예는 318년 건강에서 스스로 황제에 즉위하여 나라의 이름을 '진(Jin)'으로 잇고 역사적으로 '동진(Eastern Jin)' 왕조의 초대 황제(원제)가 되었습니다. 황제로 즉위하는 과정에서 그의 힘은 미약했으나, 똑똑한 재상이었던 낭야 왕씨 가문의 왕도(Wang Dao)와 명장 왕돈(Wang Dun)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때 백성들과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왕씨와 사마씨가 천하를 나누어 다스린다'는 노랫말이 널리 퍼질 정도로 강력한 귀족 정치 체제가 성립되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가 남쪽으로 피난을 가기 위해 강을 건널 때, 강속에 큰 용이 나타나 배를 머리로 밀어 안전하게 도하를 도왔다는 영웅적 일화가 전해지며, 낭야 지역의 오래된 신화에는 그가 천명을 받아 장차 양쯔강 이남에서 문명을 보존할 위대한 황제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속삭여졌습니다. 비록 북방의 고토를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사마예는 남쪽에서 한족의 문화적 전통과 정통성을 지켜내는 역사적 공헌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