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슈타인은 보헤미아의 개신교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젊은 시절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해 큰 재산을 얻었습니다. 보헤미아 반란이 진압된 뒤 반란 귀족들의 몰수된 땅을 값싸게 사들여 보헤미아 북부에 거대한 영지를 만들었고, 그곳에서 곡식과 무기, 옷감을 직접 생산했습니다.
그의 진짜 재능은 전투보다 조직과 보급에 있었습니다. 1625년 그는 황제에게 '내 돈으로 군대를 모아 드리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대신 군대를 유지할 방법으로 지나가는 지역에서 세금과 식량을 걷는 방식을 썼습니다. 이렇게 모은 병력이 한때 10만 명을 넘었고, 그는 자신의 영지에서 나오는 물자로 이 군대를 먹였습니다. 덕분에 황제는 제후들의 도움 없이도 싸울 수 있는 군대를 처음으로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덴마크군을 북쪽으로 밀어내며 발트해까지 진출했지만, 지나친 힘은 곧 두려움을 샀습니다. 그가 지나간 지역은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가리지 않고 부담을 졌고, 제후들은 황제에게 그의 해임을 요구했습니다. 1630년 황제는 이 요구를 받아들였는데, 하필 그때 스웨덴이 상륙했습니다.
1632년 다시 불려 온 그는 뤼첸에서 구스타브 2세 아돌프와 격돌해 전장에서 물러났지만 스웨덴 왕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그는 황제의 허락 없이 여러 세력과 평화 협상을 벌였고, 이를 배신으로 본 황제가 1634년 지휘권을 박탈하자 부하 장교들에게 살해되었습니다. 그는 별자리를 보고 앞날을 점치는 점성술을 굳게 믿어 중요한 결정마다 점성술사를 곁에 두었는데, 정작 자신의 최후는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 극적인 삶은 훗날 실러의 희곡 '발렌슈타인' 3부작으로 되살아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