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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5세

팔츠 선제후, 보헤미아 국왕 (1596~1632)

생애

프리드리히 5세는 라인강 가의 팔츠를 다스린 제후로, 황제를 뽑는 선제후 일곱 자리 가운데 하나를 물려받았습니다. 칼뱅파 신앙을 가졌고, 개신교 제후들의 방어 동맹인 개신교 연합의 대표를 맡았습니다. 열여섯 살에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의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해, 유럽 개신교 세력의 희망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1619년 보헤미아 귀족들이 페르디난트 2세를 왕에서 끌어내리고 그에게 왕관을 제안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반대가 많았습니다. 황제와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었고, 장인인 잉글랜드 왕도 돕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신앙을 지킬 기회라 여기고 왕관을 받아들여 프라하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군대도, 돈도, 확실한 동맹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보헤미아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던 성상과 장식을 칼뱅파 방식대로 교회에서 치우게 해 현지 민심마저 잃었습니다. 1620년 11월 백산 전투에서 그의 군대는 두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고, 그는 급히 프라하를 떠나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겨울 한 철만 왕 노릇을 했다는 뜻에서 사람들은 그를 겨울왕이라 불렀습니다.
패배의 대가는 컸습니다. 황제는 그의 선제후 자격을 빼앗아 바이에른 공작에게 넘겼고, 팔츠 영지도 잃었습니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영지를 되찾으려 애썼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1632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만 그의 딸 소피아의 후손이 훗날 영국 왕위를 잇게 되어, 그의 혈통은 유럽 왕실에 오래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