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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슐리외 추기경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의 재상 (1585~1642)

생애

아르망 장 뒤 플레시, 곧 리슐리외는 가난해진 귀족 집안을 위해 스물한 살에 주교가 되었고, 뛰어난 실무 능력으로 왕비의 신임을 얻어 궁정에 들어갔습니다. 1622년 추기경이 되었고 1624년부터 루이 13세의 재상으로 프랑스의 정책을 사실상 이끌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두 가지였습니다. 안으로는 왕의 권한에 도전하는 세력을 누르는 것이었고, 밖으로는 프랑스를 동서로 감싸고 있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포위를 푸는 것이었습니다.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가 모두 합스부르크였기 때문에, 프랑스는 서쪽과 동쪽 양쪽에서 같은 가문과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이 목표 때문에 그는 겉보기에 모순되어 보이는 선택을 했습니다. 프랑스 안에서는 개신교인 위그노의 요새 라로셸을 포위해 무너뜨렸지만, 나라 밖에서는 개신교 나라인 네덜란드 공화국과 스웨덴에 막대한 자금을 대 주었습니다. 종교가 같은지보다 프랑스에 이익이 되는지를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런 태도를 두고 후대 사람들은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외교의 출발점이라고 평가합니다.
1635년 그는 마침내 프랑스를 직접 참전시켰습니다. 초기에는 에스파냐군이 파리 가까이까지 밀고 들어와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그가 정비한 군대와 재정은 결국 1643년 로크루아의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그 승리를 보지 못하고 1642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세운 방향은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프랑스가 최대 수혜자가 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프랑스 학문을 다듬기 위해 그가 만든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