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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체르클라에스 폰 틸리

가톨릭 동맹군 사령관 (1559~1632)

생애

틸리는 지금의 벨기에 지역 브라반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 에스파냐 군대에서 테르시오 전술을 배웠고, 이후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도 경험을 쌓았습니다. 검소하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평생을 군대에서 보내 '수도승 사령관'이라 불렸으며, 부하들에게는 엄격했지만 병사들의 신망은 두터웠습니다.
1610년 바이에른 공작이 만든 가톨릭 동맹의 군대를 맡아 훈련시켰고, 30년 전쟁이 터지자 이 부대를 이끌고 보헤미아로 향했습니다. 1620년 백산 전투에서 그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적을 향해 비탈을 밀어 올리는 정면 공격을 감행해 두 시간 만에 승부를 냈습니다. 이후 10년 넘게 개신교 제후들의 군대를 차례로 격파하며 거의 지지 않는 사령관이라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그의 이름에 가장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운 사건은 1631년 마그데부르크입니다. 반년 가까운 포위 끝에 도시가 함락되었고, 이어진 화재로 시민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틸리 자신은 불을 지르라 명령한 적이 없다고 했고 오늘날에도 책임 소재는 논쟁거리지만, 개신교 지역에서는 그가 학살의 상징처럼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같은 해 브라이텐펠트에서 그는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새로운 전술과 처음으로 정면으로 맞붙었습니다. 두껍고 느린 그의 대형은 얇고 빠르게 움직이는 스웨덴군에게 옆구리를 내주며 무너졌고, 이는 그의 첫 큰 패배였습니다. 이듬해 봄 레흐강에서 도강을 막다 다리에 포탄을 맞았고, 그 상처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