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 제국의 섭정 및 최고사령관 (칸이 카난)
"제국의 군대는 어린 황제 폐하의 칼날이니, 물러서는 자는 무굴의 충신이 아니다."— 제2차 파니파트 전투를 앞두고 후퇴를 주장하던 장수들을 질타하며
바이람 칸(1501년 ~ 1561년)은 무굴 제국의 군사령관이자 정치가로, 제1대 바부르, 제2대 후마윤, 제3대 악바르까지 3대 황제를 보필하며 멸망 위기에 처했던 무굴 제국을 재건한 일등공신입니다.
바이람 칸은 1501년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바다흐샨에서 태어났습니다. 투르크멘계 카라 코윤루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그는 16세에 바부르의 군대에 입대하여 용맹을 떨쳤습니다. 바부르 사후에는 후마윤의 최측근 장수로 활약하며 수르 제국과의 격전에서 끝까지 후마윤의 곁을 지켰습니다. 후마윤이 페르시아 사파비 제국으로 망명할 때도 함께 동행하여 사파비 황제 타흐마스프 1세를 설득해 지원군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외교적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1555년 바이람 칸은 마칠와라 전투에서 아프간 군대를 대파하고 후마윤의 델리 수복을 진두지휘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후마윤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그는 칼라나우르에서 13세의 소년 악바르를 즉각 황제로 선포하고 섭정(아탈리크)이자 군 최고사령관인 '칸이 카난(Khan-i-Khanan, 귀족 중의 귀족)'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당시 힌두 명장 헤무가 델리를 점령하고 진격해오자 많은 장수가 카불로 도망칠 것을 권했으나, 바이람 칸은 결사항전을 결단하고 제2차 파니파트 전투에서 수적 열세를 딛고 기적적인 대승을 일궈냈습니다.
이후 4년간 바이람 칸은 어린 악바르를 대신해 전권을 행사하며 그왈리오르, 자운푸르 등을 병합하고 제국의 행정을 정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막강한 권력과 엄격한 통제는 악바르의 유모 마함 안가를 비롯한 궁정 귀족들의 불만을 샀고, 청년으로 성장한 악바르 역시 직접 통치(친정)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1560년 악바르가 친정을 선포하자 바이람 칸은 잠시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되었고, 악바르의 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악바르는 그의 옛 공로를 기려 죄를 묻지 않고 메카 순례(하지)를 떠날 수 있도록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1561년 순례길에 올랐던 구자라트의 파탄에서, 과거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었던 아프간인의 기습을 받아 칼에 찔려 60세의 나이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