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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라나 프라타프

메와르 왕국의 제54대 마하라나

메와르 왕국 (시소디아 라지푸트) 1540년 ~ 1597년 (나이: 57세)
"치토르가르를 되찾기 전까지 나는 결코 금은 그릇에 밥을 먹지 않으며, 푹신한 침대에 눕지도 않으리라."
— 치토르가르 함락 후 야생 나뭇잎을 식기로 쓰며 결사항전을 다짐했던 맹세

생애

마하라나 프라타프(1540년 ~ 1597년, 본명: 프라타프 싱 1세)는 인도 라자스탄 메와르 왕국의 제54대 통치자로, 악바르 대제의 막강한 무굴 제국에 맞서 평생 타협 없는 항전을 이어간 라지푸트의 영원한 영웅입니다.

라나 상가의 혈통과 왕위 계승

프라타프는 1540년 쿰발가르 요새에서 우다이 싱 2세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바부르와 칸와 전투에서 맞붙었던 전설적인 맹장 라나 상가였습니다. 1568년 악바르가 치토르가르 요새를 함락시키고 대학살을 벌이자, 왕실은 험준한 아라발리 산맥의 신수도 우다이푸르로 피신했습니다. 1572년 부왕이 서거하자 프라타프는 귀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고난의 시기에 메와르의 마하라나(군주)로 즉위했습니다.

굴복을 거부한 라지푸트의 자존심

당시 엠버(자이푸르), 조드푸르, 비카네르 등 대부분의 라지푸트 왕국들은 악바르의 회유에 응해 황실과 통혼하고 무굴의 고관이 되어 안락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악바르는 프라타프에게도 여섯 차례나 평화 사절단을 보내며 복속을 권유했으나, 프라타프는 외세에 머리를 숙이고 자매를 바치는 굴종을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는 치토르가르를 되찾을 때까지 바닥에 풀을 깔고 자며 나뭇잎 그릇에 밥을 먹겠다는 결연한 맹세를 세웠습니다.

할디가티 전투와 명마 체타크의 전설

1576년 6월 18일, 악바르는 라지푸트 출신의 무굴 장군 만 싱 1세와 아사프 칸이 이끄는 대군을 파견했습니다. 프라타프는 불과 3,000명의 기병과 토착 부족인 빌족 궁수들을 규합해 좁은 협곡 할디가티 고개에서 결전을 벌였습니다. 프라타프는 자신의 충성스러운 애마 '체타크'를 몰고 적진 깊숙이 돌격하여 만 싱의 전투 코끼리에 말의 앞발을 올려놓고 창을 던지는 초인적인 용맹을 떨쳤습니다. 전투 중 프라타프가 중상을 입자 장수 자일라 만이 왕의 투구를 대신 쓰고 적을 유인해 전사했고, 체타크는 세 다리에 부상을 입은 채 주인을 태우고 협곡을 뛰어넘어 안전지대에 데려다준 뒤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라발리의 게릴라전과 고토 수복

할디가티 패배 후 프라타프는 아라발리 산맥의 원시림으로 숨어들어 유목 부족들과 빵을 나누어 먹으며 끈질긴 게릴라전을 전개했습니다. 충신 바마 샤가 바친 막대한 군자금을 바탕으로 군대를 재건한 그는, 무굴군이 북서 변경과 벵골 반란에 신경 쓰는 틈을 타 역습을 개시했습니다. 1582년 디웨이르 전투에서 무굴 수비대를 섬멸한 뒤, 요새 치토르가르와 만달가르를 제외한 우다이푸르, 쿰발가르 등 메와르 영토의 대부분을 기적적으로 되찾았습니다.

영웅의 서거와 사후 칭송

1597년 프라타프는 차완드에서 사냥 도중 활시위를 당기다 입은 부상이 악화되어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생 적이었던 악바르 대제조차 프라타프의 부고를 듣고 "그는 결코 이마에 굴종의 낙인을 찍지 않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군주의 위엄을 잃지 않았다"며 눈물을 흘리고 애도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날 마하라나 프라타프와 그의 명마 체타크는 인도 전역에서 자유와 용기, 불굴의 애국심을 상징하는 불멸의 존재로 추앙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