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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윤

무굴 제국의 제2대 황제 (파디샤)

무굴 제국 1508년 ~ 1556년 (나이: 48세)
"운명의 수레바퀴가 우리를 밑바닥으로 떨어뜨릴지라도, 알라의 뜻이 있다면 다시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리라."
— 신드 사막을 유랑하며 절망에 빠진 부하들을 격려하며 남긴 말

생애

후마윤(1508년 ~ 1556년, 본명: 나시르 앗딘 무함마드)은 무굴 제국의 제2대 황제(파디샤)로, '행운아'라는 이름의 뜻과 달리 극심한 불운과 시련 속에서 제국을 잃고 15년 동안 방랑하다가 끝내 델리를 수복한 파란만장한 생애의 군주입니다.

카불에서의 탄생과 아버지 바부르의 희생

후마윤은 1508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무굴 건국자 바부르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526년 제1차 파니파트 전투와 1527년 칸와 전투에 부왕과 함께 참전하며 용맹을 쌓았습니다. 1530년 후마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치명적인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아버지 바부르는 아들의 침상 주위를 세 바퀴 돌며 자신의 목숨을 대신 바쳐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적처럼 후마윤은 병상에서 일어났으나, 대신 바부르가 세상을 떠나면서 후마윤은 22세의 나이로 무굴 제국의 제2대 황제에 올랐습니다.

셰르 샤 수리와의 대결과 제국의 상실

황제가 된 후마윤은 성품이 온화하고 학문과 예술, 점성술을 사랑했으나 결단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는 바부르의 유언에 따라 이복형제들에게 영지를 떼어주었으나, 형제들은 후마윤을 돕기는커녕 사사건건 배신했습니다. 1535년 구자라트와 말와를 전격 공략하며 군사적 재능을 보였지만, 그사이 비하르에서 급부상한 아프간계 명장 셰르 샤 수리의 지략을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1539년 차우사 전투에서 기습을 당해 갠지스강에 빠져 간신히 살아남았고, 1540년 카나우지 전투에서 무굴 대군이 완전히 궤멸하면서 제국을 통째로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사막의 유랑과 악바르의 탄생

왕위를 빼앗긴 후마윤은 임신한 아내 하미다 바누 베굼과 소수의 충신들만을 이끌고 타는 듯한 신드 사막으로 피신했습니다. 물 한 모금을 구하지 못해 말의 피를 마셔야 할 정도의 참혹한 방랑 속에서, 1542년 사막의 오아시스 우마르코트 요새에서 훗날의 대제인 아들 악바르가 태어났습니다. 후마윤은 가진 것이 없어 향기로운 사향 한 조각을 부하들에게 쪼개어 나눠주며 "내 아들의 명성이 이 사향 냄새처럼 온 세상에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고 축복했습니다.

페르시아 망명과 극적인 델리 수복

형제들의 배신으로 카불에서도 쫓겨난 후마윤은 서쪽의 페르시아 사파비 제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사파비 황제 타흐마스프 1세는 후마윤을 환대했고, 충신 바이람 칸의 외교적 활약에 힘입어 1만 2천의 정예 페르시아 기병대를 지원받았습니다. 후마윤은 1545년 카불과 칸다하르를 차례로 수복하며 반역한 형제들을 진압했습니다. 1554년 수르 제국의 내분으로 기회가 찾아오자, 후마윤은 1555년 마칠와라와 시르힌드 전투에서 수르 군대를 완파하고 마침내 15년 만에 델리와 아그라로 금의환향하여 황위를 되찾았습니다.

도서관 계단의 비극과 사후 유산

그러나 운명의 신은 그에게 오랜 안식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복위한 지 불과 6개월 만인 1556년 1월, 델리의 푸라나 킬라 도서관(셰르 만달) 옥상에서 별자리를 관측하고 내려오던 후마윤은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를 듣고 계단에서 무릎을 꿇으려다 옷자락에 발이 걸려 굴러떨어졌습니다. 심각한 뇌진탕을 입은 그는 며칠 뒤 47세의 나이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스탠리 레인풀은 그의 삶을 두고 "그는 평생을 비틀거리며 방랑하다가, 결국 비틀거리며 생을 마감했다"고 평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끈질긴 인내 덕분에 무굴 제국은 멸망하지 않고 아들 악바르에게 계승되었으며, 델리에 세워진 그의 웅장한 백색 대리석 영묘인 '후마윤의 무덤'은 훗날 타지마할의 직접적인 모태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