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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칸다르 샤 수리

수르 제국의 제6대 황제 (술탄)

수르 제국 (아프간 파슈툰 수르 부족) ? ~ 1559년
"우리가 무의미한 동족상잔으로 서로의 피를 흘리는 동안, 서쪽의 무굴 잔당들이 조상의 땅을 노리고 다가오고 있다."
— 수르 왕족들의 내전 중 델리와 펀자브를 장악하며 무굴의 침략을 경고한 외침

생애

시칸다르 샤 수리( ? ~ 1559년, 본명: 아흐마드 칸 수리)는 수르 제국의 제6대 군주입니다. 셰르 샤 수리의 조카이자 사위로, 제국이 삼분되어 내전에 휩싸였을 때 펀자브와 델리를 장악하고 황제를 선포했으나, 1555년 무굴군의 총반격을 막지 못하고 제국의 종말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수르 제국의 내전과 권력 장악

1554년 강력한 중앙 집권 군주였던 이슬람 샤 수리가 급사하자, 수르 제국은 극심한 권력 투쟁에 빠졌습니다. 이슬람 샤의 매제인 무함마드 아딜 샤가 즉위했으나 각지의 아프간 총독들이 잇따라 반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펀자브의 총독이었던 아흐마드 칸 수리는 사촌인 이브라힘 샤 수리를 파라에서 격파하고 델리와 아그라를 장악한 뒤, 1555년 스스로 '시칸다르 샤'라 칭하며 제국의 패권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수르 왕족들이 북인도 전역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누며 국력을 소모하는 사이, 카불의 후마윤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1555년 시르힌드 결전과 참패

페르시아 사파비 제국의 지원을 받아 군세를 재건한 후마윤과 총사령관 바이람 칸이 인도로 진격해 오자, 시칸다르 샤는 왕국을 지키기 위해 무려 8만 명에 달하는 대군과 전투 코끼리 부대를 소집하여 펀자브의 시르힌드에서 배수진을 쳤습니다.
1555년 6월 22일 벌어진 결전에서, 바이람 칸은 정면 돌격을 피하고 거짓 후퇴로 시칸다르 샤 군대의 정예 대열을 유인했습니다. 수르 군대가 무굴군의 유인책에 걸려 진형이 흐트러진 순간, 좌우 양익에 매복해 있던 무굴 기마 궁수들이 벼락같이 측면을 포위하고 화살비를 퍼부었습니다. 수르 군대는 완전히 궤멸되었고, 패배를 직감한 시칸다르 샤는 소수의 호위대와 함께 히말라야 산자락인 시왈리크 구릉 지대로 달아났습니다.

만코트 요새 공방전과 최후

후마윤이 델리에 무혈 입성하여 15년 만에 무굴 제국을 복위한 뒤에도, 시칸다르 샤는 포기하지 않고 험준한 산악 요새인 만코트 요새(Mankot Fort)에 틀어박혀 결사 항전을 이어갔습니다.
1556년 후마윤이 갑작스럽게 사고로 사망하자 기회를 노렸으나, 열세 살에 즉위한 악바르 황제와 섭정 바이람 칸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만코트 요새를 6개월간 철통같이 포위했습니다. 식량이 완전히 고갈되자, 시칸다르 샤는 1557년 7월 마침내 요새 문을 열고 명예로운 항복을 청했습니다.
젊은 악바르와 바이람 칸은 한때 북인도를 다스렸던 군주의 위엄을 인정하여 그의 목숨을 살려주고 동쪽 벵골 접경인 비하르의 작은 영지(자기르)를 하사했습니다. 시칸다르 샤는 그곳에서 은거하다 1559년 조용히 숨을 거두었으며, 그의 죽음과 함께 수르 제국의 저항은 완전히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