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토르가르 요새 수비대 사령관 / 메르타의 군주
"우리는 성벽이 무너져도 결코 무릎 꿇지 않을 것이며, 오직 신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 끝까지 칼을 쥐고 싸우다 갈 뿐이다."— 치토르가르 공성전 당시 무굴군의 항복 권고를 일축하며 수비대에게 남긴 말
자이말 라토르(Jaimal Rathore, 1507년~1568년)는 16세기 인도 라자스탄의 명문 무가 출신으로, 무굴 제국 악바르 대제의 치토르가르 공성전에 맞서 끝까지 요새를 지키다 장렬히 전사한 전설적인 라지푸트 영웅입니다. 부상으로 걸을 수 없는 상태에서도 동료의 어깨 위에 목마를 타고 두 자루의 검을 휘두르며 마지막 돌격을 감행한 그의 초인적인 용맹은 적이었던 악바르 황제마저 깊이 감동시켰습니다.
자이말은 1507년 라토르 가문의 일파인 메르티야(Mertiya) 분파의 지배자 라오 비람데브(Rao Viramdev)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유명한 크리슈나 신 헌신 시인인 미라바이(Mirabai)의 사촌 오빠이기도 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독실한 힌두교 신앙과 엄격한 전사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1544년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메르타의 통치권을 이어받은 자이말은 뛰어난 검술과 전술적 혜안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인근 마르와르(조드푸르)의 강력한 군주 말데브 라토르의 팽창 정책과 대립하면서 고향 영지 메르타를 지키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말데브와의 전쟁 끝에 영지를 잃은 자이말은 라지푸트 연맹의 수장이자 메와르 왕국의 통치자인 마하라나 우다이 싱 2세(Udai Singh II)에게 의탁했습니다. 우다이 싱 2세는 자이말의 충성심과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바드노르(Badnor) 영지를 하사하고 요새 방어의 핵심 장수로 중용했습니다. 1567년 가을, 무굴 제국의 악바르 대제가 수만 명의 대군과 최신 오스만식 화포를 앞세워 메와르를 침공해 왔을 때, 왕실 평의회는 우다이 싱 2세가 아라발리 산맥의 숲과 계곡(훗날의 우다이푸르)으로 물러나 훗날을 도모하도록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수도이자 난공불락의 바위 요새인 치토르가르를 결사 방어할 총사령관으로 바로 자이말 라토르가 지명되었습니다.
치토르가르는 150미터 높이의 수직 절벽 위에 세워진 천혜의 요새였으나, 악바르의 공세는 전례 없이 치밀하고 거셌습니다. 자이말은 동료 장수 파타 시소디아(Patta Sisodia)와 함께 8,000명의 라지푸트 수비대와 수만 명의 백성을 이끌고 성문을 굳게 닫았습니다. 악바르는 대포를 끌어올리고 지붕 달린 거대한 방호 참호인 사바트(Sabat)를 파 성벽 기저부로 접근했으며, 지하 암반을 뚫고 수백 통의 화약을 채워 넣은 지하 갱도를 폭파했습니다. 굉음과 함께 성벽이 무너져 내릴 때마다, 자이말은 빗발치는 포탄과 총탄을 무릅쓰고 최전선에 서서 병사들을 지휘하며 밤새 무너진 성벽을 흙과 바위로 다시 메웠습니다. 그의 강철 같은 지도력 덕분에 수비대는 무려 넉 달 동안이나 무굴 대군의 총공세를 완벽하게 저지했습니다.
1568년 2월 22일 깊은 밤, 대규모 폭파로 심각하게 파괴된 성벽의 라코타(Lakhota) 문 부근을 수리하기 위해 자이말이 직접 횃불을 밝히고 인부들을 독려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맞은편 사바트에서 어둠을 뚫고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악바르 대제가 자신이 가장 아끼던 명총 상그람(Sangram)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날아든 총탄은 자이말의 허벅지를 관통하여 치명적인 중상을 입혔습니다. 최고 사령관이 쓰러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성 안은 극심한 비탄에 휩싸였습니다. 더 이상의 방어가 불가능함을 직감한 요새 안의 여인들은 적의 능욕을 피하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거대한 화염 속으로 뛰어드는 자우하르(Jauhar)를 행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살아남은 라지푸트 전사들은 샤프란색 옷을 입고 최후의 돌격인 사카(Saka)를 감행했습니다. 총상으로 인해 두 다리로 서 있을 수 없었던 자이말은 성 안에 누워 죽기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는 젊은 조카이자 맹장인 칼라 라토르(Kalla Rathore)의 목마를 탄 채 양손에 칼을 쥐고 전장 한복판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일체가 되어 마치 네 개의 팔을 가진 힌두의 전쟁의 신처럼 사방으로 칼을 휘두르며 수많은 적을 베어 넘기다 마침내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악바르 대제는 치토르가르를 함락시킨 후에도 요새를 목숨 바쳐 지켜낸 자이말과 파타의 초인적인 용기와 숭고한 충성심에 깊은 경의를 표했습니다. 황제는 수도 아그라 성(Agra Fort)의 정문인 하티 폴(Hathi Pol, 코끼리의 문) 양쪽에 자이말과 파타가 실물 크기의 전투 코끼리를 타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거대한 석상을 조각하여 세웠습니다. 적국의 황제마저 고개 숙이게 만든 그의 용맹과 희생정신은 수백 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라자스탄의 음유시인들이 부르는 무용담과 민담 속에서 영원한 영웅의 표상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