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 제국의 제3대 황제 (파디샤)
"현명한 군주는 백성의 다양한 신앙을 억누르지 않고, 온 세상의 평화(술히 쿨)를 지향해야 한다."— 종교 간 대화와 화합을 강조하며 궁정 학자들에게 남긴 가르침
악바르 대제(1542년 ~ 1605년, 본명: 잘랄 앗딘 무함마드 악바르)는 무굴 제국의 제3대 황제로, 탁월한 군사적 정복과 혁신적인 내치, 종교적 관용 정책을 통해 무굴 제국의 번영과 황금기를 활짝 연 군주입니다.
악바르는 1542년 부왕 후마윤이 수르 제국의 셰르 샤에게 쫓겨 신드 지방의 사막을 유랑하던 중 우마르코트 요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삼촌들의 손에 자라며 거친 유목 전사들의 승마술과 사냥, 궁술을 익혔으나, 글을 읽고 쓰는 법은 배우지 못해 평생 난독증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기억력이 비상하고 호기심이 풍부하여 신하들에게 책을 읽어주게 하며 철학, 종교, 예술을 깊이 탐구했습니다.
1556년 후마윤이 델리 도서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갑작스럽게 사고사하자, 악바르는 불과 13세의 어린 나이에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당시 북인도는 힌두 명장 헤무가 이끄는 대군이 델리와 아그라를 장악하여 무굴 제국은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충직한 섭정 바이람 칸의 보좌를 받은 악바르는 제2차 파니파트 전투에서 수적으로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헤무의 코끼리 부대를 격파하며 극적으로 델리를 수복했습니다. 18세가 되던 1560년, 악바르는 섭정 바이람 칸을 물러나게 하고 스스로 국정을 총괄하는 친정을 선포했습니다.
악바르는 주변 왕국들을 차례로 평정해 나갔습니다. 1567~1568년 치토르가르 요새와 1569년 란탐보르 요새를 치열한 공병전 끝에 함락시켜 라지푸트 세력을 제압했고, 1573년에는 부유한 해상 무역 중심지인 구자라트 술탄국을 병합했습니다. 이어 1576년 갠지스 델타의 비옥한 벵골 술탄국을 정복하고 할디가티 전투에서 마하라나 프라타프의 저항을 물리쳤으며, 말년에는 카슈미르, 신드, 오디샤, 데칸 북부까지 판도를 넓혀 인도 아대륙 대부분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악바르는 군사와 관료를 통합한 체계적인 등급제인 만사브다르 제도를 창설하고, 토지 측량과 세제 개혁을 단행해 중앙 집권 체제를 다졌습니다. 특히 힌두교도 등 비무슬림에게 부과되던 무거운 인두세인 '지즈야'를 과감히 폐지하고, 라지푸트 왕녀들과 정략결혼을 맺으며 힌두 귀족들을 제국 최고위 관직에 중용했습니다. 파테푸르 시크리에 '이바다트 카나(예배당)'를 짓고 이슬람, 힌두, 자이나, 조로아스터, 기독교 학자들과 토론하며 만인을 위한 평화라는 뜻의 '술히 쿨(Sulh-i-kul)'을 선포했습니다.
말년에는 사랑하는 아들 살림(훗날의 자한기르)의 반란과 절친했던 재상 아불 파즐의 암살로 깊은 슬픔을 겪었습니다. 1605년 이질에 걸려 63세로 아그라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유해는 아그라 인근 시칸드라의 장엄한 영묘에 안장되었습니다. 군사적 위업뿐 아니라 문화와 종교의 대화합을 이뤄낸 그의 치세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의 모범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