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라트 술탄국의 제9대 술탄
"외국의 이교도 함대가 감히 우리 앞바다를 위협한다면, 오스만의 대포와 아라비아해의 바람이 그들을 수장시킬 것이다."— 디우 앞바다에서 포르투갈의 해상 침략에 맞서 오스만 제국과의 군사 동맹을 체결하며 남긴 말
바하두르 샤(1496년경 ~ 1537년, 본명: 바하두르 칸)는 구자라트 술탄국 무자파르 왕조의 제9대 술탄으로, 16세기 초 구자라트의 영토를 최대로 확장하고 당대 인도 최강의 화포 부대를 육성한 정복 군주입니다. 서인도의 부유한 해상 무역을 바탕으로 말와와 라지푸타나를 제압했으나, 무굴 제국 황제 후마윤과의 대전쟁 및 포르투갈 세력과의 치열한 해양 패권 다툼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습니다.
바하두르 샤는 구자라트 술탄 무자파르 샤 2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무용과 야망 탓에 맏형인 시칸다르 샤의 시기를 받아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젊은 시절 조국을 탈출하여 긴 유랑길에 올랐습니다. 라지푸트 메와르 왕국의 치토르가르를 거쳐 델리 술탄국의 이브라힘 로디와 자운푸르 영주들의 궁정을 떠돌며 각지의 군사 전술과 정세를 익혔습니다. 1526년 바부르가 델리를 침공할 무렵, 구자라트에서는 부왕이 승하하고 즉위한 형 시칸다르 샤가 불과 몇 달 만에 암살당하는 정변이 일어났습니다. 귀족들의 긴급한 부름을 받고 돌아온 바하두르는 경쟁자들을 제압하고 스물한 살의 나이에 당당히 구자라트의 술탄에 올랐습니다.
술탄에 오른 바하두르 샤는 눈부신 군사적 팽창을 시작했습니다. 1531년 오랜 라이벌이었던 이웃 말와 술탄국의 수도 만두를 함락시키고 국토를 전격 병합했으며, 베라르와 칸데시의 군주들을 복속시켰습니다. 1535년에는 라지푸트의 심장부인 치토르가르 요새를 대군으로 포위 공격하여 함락시켰습니다.
바하두르 샤의 막강한 군사력 뒤에는 선진적인 화약 무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인도양 해상 패권을 노리던 포르투갈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과 긴밀한 군사 동맹을 맺었습니다. 오스만 황제 쉴레이만 1세로부터 기술과 군사를 지원받았으며, 특히 오스만 최고의 명포수 루미 칸(Rumi Khan)을 포병 사령관으로 영입하여 수백 문의 청동 대포와 유럽식 화승총 부대를 구축했습니다. 이로써 구자라트는 당대 인도 아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화포 군단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기세가 오른 바하두르 샤는 무굴 제국에 맞서다 쫓겨난 로디 왕조의 망명 귀족들을 비호하고 대규모 군자금을 지원하며 델리의 무굴 황실을 공공연히 위협했습니다. 이에 격분한 무굴의 제2대 황제 후마윤이 1535년 대군을 이끌고 구자라트로 진격했습니다.
만드소르 평원에서 양군이 대치했을 때, 포병 사령관 루미 칸이 후마윤에게 매수되어 결정적인 배신을 감행했고, 보급선이 끊긴 구자라트군은 허망하게 붕괴했습니다. 바하두르 샤는 만두를 거쳐 파바가드산 절벽 위에 세워진 천혜의 요새 참파네르로 후퇴했습니다. 그러나 후마윤이 한밤중에 39명의 결사대와 함께 쇠못을 박으며 깎아지른 수직 암벽을 직접 기어올라 기습을 감행하자 참파네르 요새마저 함락당했습니다. 바하두르 샤는 수 세기 동안 모아둔 왕실의 금은보화를 모두 빼앗긴 채 남쪽 바닷가 요새 디우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바하두르 샤는 무굴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숙적이었던 포르투갈과 손을 잡는 위험한 도박을 감행했습니다. 1535년 포르투갈 총독 누누 다 쿠냐와 바세인 조약을 맺고, 군사 지원을 받는 대가로 전략적 해상 요충지인 디우에 포르투갈 요새 건설을 허용했습니다. 이듬해 동쪽 비하르에서 셰르 샤 수리의 반란이 일어나 후마윤이 급히 군대를 돌리자, 바하두르 샤는 민중의 환영을 받으며 구자라트 본토를 극적으로 수복했습니다.
그러나 무굴의 위협이 사라지자 디우 요새를 거점으로 세력을 키운 포르투갈과의 갈등이 폭발했습니다. 1537년 2월 13일,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바하두르 샤는 소수의 호위병만을 거느리고 디우 앞바다에 정박한 포르투갈 총독의 기함에 올랐습니다. 협상 도중 살해 위협을 감지한 술탄이 급히 자신의 배로 돌아가려 하자 포르투갈 병사들이 들이닥쳤고, 갑판 위에서 치열한 난투극이 벌어졌습니다. 바하두르 샤는 바다로 뛰어내려 헤엄쳐 탈출하려 했으나, 뒤쫓아온 포르투갈 병사의 노에 머리를 맞고 바다로 가라앉아 향년 약 41세의 젊은 나이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끝내 수습되지 못했으며, 용맹했던 술탄의 죽음과 함께 구자라트 술탄국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