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3년 무렵, 과거 지중해를 호령하던 비잔티움 제국 -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천 년 넘게 로마 제국을 계승한 중세 제국입니다. 1453년 멸망할 때까지 기독교와 로마법의 수호자이자 고대 지식의 보존자로 역사에 남았습니다.(동로마 제국)은 쇠퇴를 거듭하여 수도 콘스탄티노플과 주변의 작은 영토만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반면, 새롭게 떠오르는 강국 오스만 제국 - 오스만 제국은 아나톨리아(현재의 튀르키예)의 작은 튀르크 부족에서 시작해, 동남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등 세 대륙에 걸쳐 거대한 영토를 지배한 강력한 이슬람 제국입니다.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양과 서양의 교차점을 장악하고 중요한 무역로를 통제하며 번영을 누렸습니다.오스만의 위대한 꿈과 건국전설에 따르면, 13세기 후반 제국을 세운 오스만 1세는 어느 날 놀라운 꿈을 꾸었습니다. 존경하는 이슬람 학자의 가슴에서 달이 떠올라 자신의 가슴으로 들어오더니, 배꼽에서 거대한 나무가 자라나 그 가지가 온 세상을 덮는 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꿈을 오스만과 그의 후손들이 세상을 다스릴 거대한 제국을 세울 것이라는 하늘의 계시로 믿었습니다.콘스탄티노플 함락오스만 군대의 핵심은 엄격한 훈련을 받은 최정예 보병대 예니체리였습니다. 이들과 거대한 화약 대포를 앞세워, 1453년 젊은 술탄 메흐메트 2세는 천 년을 버텨온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을 함락시켰습니다. 이 역사적인 승리로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했고, 도시는 오스만의 새롭고 화려한 수도가 되었습니다.황금기를 이끈 쉴레이만 대제제국은 16세기 쉴레이만 1세(대제)의 통치 아래 가장 눈부신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빈을 포위할 정도로 유럽 깊숙이 영토를 넓힌 뛰어난 정복자였을 뿐만 아니라, 법을 훌륭하게 정비하고 예술을 사랑한 성군이었습니다. 그의 시대에 오스만 제국은 엄청난 부를 누렸으며, 문화와 건축, 과학이 크게 발달했습니다.쇠퇴와 제국의 멸망하지만 영원한 제국은 없었습니다. 17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은 내부의 부패와 기술 발전의 정체로 서서히 힘을 잃어갔습니다. 러시아 제국, 합스부르크 제국 등 강해지는 유럽 국가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19세기에는 '유럽의 병자'라는 슬픈 별명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년)에서 패배한 제국은 영토가 갈기갈기 찢기며 1922년에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이후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영도 아래 오늘날의 튀르키예 공화국이 새롭게 탄생하게 됩니다.의 젊은 술탄 메흐메트 2세 - 21세의 젊은 나이에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의 위대한 술탄입니다.는 이 천년의 고도를 정복하겠다는 야망에 불타올랐습니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은 지난 천 년 동안 수많은 외적의 침입을 모두 막아낸 난공불락의 '테오도시우스 성벽 -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보호하기 위해 5세기에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가 건설한 거대한 방어용 성벽입니다. 안쪽부터 바깥쪽으로 내성벽, 외성벽, 해자(물이 채워진 구덩이)로 이루어진 견고한 3중 방어선을 갖추고 있어 중세 시대 가장 완벽하고 난공불락인 요새로 평가받았습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랍, 불가르, 루스 등 수많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제국을 지켜냈으나, 1204년 제4차 십자군 원정 때 바다 쪽 성벽이 뚫리면서 처음으로 함락되었고, 1453년 오스만 제국의 대형 대포 공격에 3중 성벽 자체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삼중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메흐메트 2세는 우르반이라는 헝가리 출신 기술자를 고용하여 길이가 8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우르반 거포(Cannon)'를 비롯한 수많은 대포 - 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해 무거운 돌이나 쇠공을 멀리 쏘아 보내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대포의 핵심인 '화약'은 고대 중국에서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려던 사람들에 의해 우연히 발명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대나무 통에 화약을 채워 불을 뿜는 '화창' 형태로 쓰였지만, 점차 단단한 금속으로 만든 커다란 통(포신) 형태로 발전하며 지금 우리가 아는 대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이 무서운 신무기는 몽골 제국의 정복 전쟁과 실크로드의 무역 상인들을 통해 중동의 이슬람 세계와 유럽으로 빠르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15세기에 이르러 대포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역사적인 전쟁들이 일어납니다. 백년전쟁의 마지막 전투였던 1453년 카스티용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야전에서 초기 형태의 대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잉글랜드군을 궤멸시켰습니다. 놀랍게도 같은 해인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전투에서도 오스만 제국이 길이가 8미터나 되는 초대형 '우르반 거포' 등을 동원해, 천 년간 무너지지 않던 비잔티움 제국의 난공불락 성벽을 부수고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이처럼 대포의 등장은 전쟁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기존에 튼튼하다고 믿었던 성벽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었고, 단단한 갑옷을 입은 무적의 기사들도 대포 앞에서는 꼼짝할 수 없게 되면서 중세 기사와 성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를 전장에 투입했습니다.
1453년 4월, 마침내 포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거대한 대포들이 불을 뿜으며 고대의 성벽을 무자비하게 파괴했습니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 11세 -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될 때 항복을 거부하고 병사들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황제가 이끄는 비잔티움 수비대는 낮에 부서진 성벽을 밤마다 나무와 흙으로 끈질기게 수리하며 버텼습니다. 오스만군은 바다 쪽에서도 공격을 시도했지만, 비잔티움 측이 주요 항구인 금각만 - 금각만(Golden Horn)은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을 감싸고 있는 소의 뿔 모양을 한 좁고 깊은 바다(만)입니다. 옛날부터 파도가 잔잔하고 수심이 깊어 배들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최고의 천연 항구였습니다. 비잔티움 제국 시절에는 무역선들이 끊임없이 드나들며 도시를 아주 부유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또한 적으로부터 도시를 지키는 아주 중요한 방어선이기도 했는데, 적의 배가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바다 입구 양쪽에 거대한 쇠사슬을 쳐서 막아두었던 것으로 매우 유명합니다. 입구에 거대한 쇠사슬을 쳐놓아 배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메흐메트 2세는 역사에 남을 기발한 전술을 지시합니다. 바로 산언덕에 기름칠을 한 나무 길을 깔고, 그 위로 수십 척의 군함을 육지로 끌어당겨 산을 넘은 뒤 금각만 바다에 띄운 것입니다! 이 놀라운 작전으로 인해 수비대는 바다 쪽 성벽까지 방어해야 했고, 적은 병력은 더욱 분산되고 말았습니다.
끊임없는 포격과 공격에 시달리던 5월 29일, 오스만군은 총공세를 펼쳤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수비대는 필사적으로 싸웠으나, 치열한 전투 와중에 성벽의 작은 문 하나가 실수로 열려 있는 틈을 타 오스만군이 성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방어선이 무너지는 것을 본 콘스탄티누스 11세 황제는 황제의 상징을 벗어 던지고 병사들과 함께 적진으로 뛰어들어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마침내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되었고, 메흐메트 2세는 도시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꾸며 승리자로 입성했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아주 큰 두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첫째, 비잔티움 제국은 고대 로마 제국에서 그대로 이어진 진짜 로마였기 때문에 이 사건은 무려 1,500년 넘게 이어져 온 위대한 로마 제국 역사의 '완전한 끝'을 의미했습니다. 둘째, 동양의 비단과 향신료를 서양으로 전해주던 중요한 무역로가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제국에 의해 꽉 막혀버렸습니다. 동양의 물건을 구하기 힘들어진 유럽 사람들은 결국 아시아로 가는 아예 새로운 바닷길을 찾기 위해 위험한 모험을 떠나야만 했고, 이것이 훗날 콜럼버스나 마젤란이 활약하는 웅장한 '대항해시대'를 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