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6년, 테무친은 오랜 분열과 전쟁을 겪던 초원 부족들을 완벽하게 통합하고 오논강 - 몽골과 러시아 영토를 흐르는 역사적인 강으로, 몽골 제국을 세운 칭기즈 칸이 태어난 고향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1206년 칭기즈 칸은 오논강 상류에서 초원의 여러 유목민 부족장들을 불러 모아 거대한 부족 회의인 '쿠릴타이'를 열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오랜 세월 서로 싸우던 몽골 초원의 부족들이 하나로 뭉쳤고, 마침내 칭기즈 칸을 온 세상의 대칸(으뜸이 되는 지도자)으로 추대하며 몽골 제국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였습니다. 강가에서 '칭기즈 칸 - 본명은 테무친으로, 몽골 초원의 여러 유목 부족을 하나로 통일하고 몽골 제국을 세웠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군사 지도자 중 한 명입니다.'으로 즉위하여 몽골 제국 - 몽골 제국은 13세기와 14세기에 존재했던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육상 제국입니다. 동아시아의 현재 몽골 지역에서 시작된 몽골 제국은 전성기에 동쪽으로는 일본해에서 서쪽으로는 동유럽 일부까지, 북쪽으로는 북극 일부, 남쪽으로는 인도 아대륙, 동남아시아 본토, 이란 고원, 그리고 서쪽으로는 레반트와 카르파티아 산맥까지 뻗어 나갔습니다.을 세웠습니다. 대대로 쌓여온 유목민들의 한을 풀고 북방의 패권을 거머쥐고자 한 칭기즈 칸은, 활을 쏘는 유목민들의 기동력을 극대화한 신속한 군대 제도를 새롭게 조직하여 인근 정착 제국들을 향한 대대적인 정벌을 구상했습니다.
강력한 대국인 금나라 - 1115년부터 1234년까지 중국 북부와 동북부 지역을 통치했던 여진족의 왕조입니다. 창건자 아구다는 '철(요나라)은 녹슬지만 금(금나라)은 결코 변하지 않고 순수하다'는 전설적인 선언과 함께 국호를 '금'으로 정했다고 전해집니다. 강력한 철갑기병 정예군을 앞세워 번성했으나, 결국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 제국에 의해 멸망했습니다.와 직접 싸우기 전에, 칭기즈 칸은 배후(등 뒤의 군사적 위협)를 든든하게 다지기 위해 탕구트 - 1038년부터 1227년까지 북서 중국을 지배했던 강력한 불교 제국입니다. 실크로드의 핵심 요충지인 하서회랑을 장악하며 동서 무역의 중개자로 번성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문자 중 하나인 서하 문자는 학자 야리(Iri)가 단기간에 창제했다고 전해집니다. 유목민의 강인함과 정착 문명의 행정력을 결합하여 강력한 국력을 자랑했으며, 칭기즈 칸과 마지막까지 혈투를 벌인 나라로도 유명합니다.족이 세운 서하를 먼저 공격했습니다(1205년~1210년). 몽골군은 서하의 수도 흥경부를 겹겹이 포위하고 황하 - 황하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자 고대 중국 문명의 요람(어떤 일이 일어나고 자라나는 근원지)입니다. 강물이 싣고 온 비옥한 황토 덕분에 일찍부터 농경 사회가 발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래와 흙이 쌓여 강바닥이 높아짐에 따라 역사적으로 수없이 범람(물이 흘러 넘침)하여 엄청난 수해를 입혔기 때문에 '중국의 슬픔'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예로부터 황하의 물길을 잘 다스리는 것(치수)은 왕조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중요한 국가 과제였습니다.의 강물을 끌어들여 성을 물에 잠기게 만드는 수공(물로 공격함)을 펼치는 등 거센 압박을 가했습니다. 결국 서하 왕조는 칭기즈 칸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무릎을 꿇고 몽골의 복속(부하 국가로 만듦) 요구를 수용했습니다.
서하를 굴복시켜 배후의 안전을 확보한 칭기즈 칸은 1211년 마침내 금나라 제1차 원정을 감행했습니다. 당시 여진족의 금나라는 수천만 명의 풍부한 인구와 만리장성 - 중국의 역사적인 북방 국경을 따라 유라시아 초원의 다양한 유목 세력의 침공을 막아내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축조된 거대한 성곽 방어선입니다. 춘추전국시대부터 진나라, 한나라, 그리고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계속해서 건설 및 보수되었습니다.이 거대한 성벽에 얽힌 가장 유명한 민담으로 '맹강녀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진나라 시기 가혹한 강제 노역에 동원되어 장성을 쌓다 숨진 남편의 소식을 들은 아내 맹강녀가 슬픔에 겨워 장성 밑에서 며칠 밤낮을 울부짖자, 그녀의 눈물과 통곡에 하늘이 감복하여 장성 수백 리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그 아래 묻혀 있던 남편의 유골이 드러났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만리장성은 거대한 문명의 방벽이자, 그 성벽을 쌓아 올리기 위해 희생된 수많은 민초들의 눈물이 서려 있는 복합적인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이라는 거대한 성벽을 가진 강력한 대국이었으나, 지배층 내부의 심각한 갈등과 분열로 약해져 있었습니다. 이를 꿰뚫어 본 칭기즈 칸은 만리장성 관문을 교묘히 우회하여 금나라 영토를 기습했고, 1211년 야호령 전투에서 금나라 대군을 대파하는 결정적인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몽골군은 기세를 몰아 금나라 심장부로 진격하여 1215년 마침내 금나라의 수도인 중도(현재의 베이징)를 완전히 함락시켰습니다. 수도를 잃고 파멸 위기에 처한 금나라 황실은 남쪽의 개봉(카이펑)으로 서둘러 도망치듯 수도를 옮기며 겨우 목숨만 연명하게 되었습니다. 이 원정으로 금나라는 만리장성 이남의 거대한 화북 영토 대부분을 몽골에 내어주며 비참한 처지로 몰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