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 칸이 세상을 떠난 후 뒤를 이은 몽골 제국 - 몽골 제국은 13세기와 14세기에 존재했던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육상 제국입니다. 동아시아의 현재 몽골 지역에서 시작된 몽골 제국은 전성기에 동쪽으로는 일본해에서 서쪽으로는 동유럽 일부까지, 북쪽으로는 북극 일부, 남쪽으로는 인도 아대륙, 동남아시아 본토, 이란 고원, 그리고 서쪽으로는 레반트와 카르파티아 산맥까지 뻗어 나갔습니다.의 제2대 대칸 오고타이 - 칭기즈 칸의 셋째 아들이자 몽골 제국의 제2대 대칸입니다. 동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완성했으며, 수도 카라코룸 건설과 역참제 정비를 통해 제국의 기틀을 닦았습니다.는 1230년, 오랜 숙적인 금나라 - 1115년부터 1234년까지 중국 북부와 동북부 지역을 통치했던 여진족의 왕조입니다. 창건자 아구다는 '철(요나라)은 녹슬지만 금(금나라)은 결코 변하지 않고 순수하다'는 전설적인 선언과 함께 국호를 '금'으로 정했다고 전해집니다. 강력한 철갑기병 정예군을 앞세워 번성했으나, 결국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 제국에 의해 멸망했습니다.를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한 대규모 2차 정벌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당시 금나라는 칭기즈 칸의 무서운 침공으로 수도를 베이징에서 남쪽의 개봉 - 개봉(카이펑)은 본래 북송의 화려한 수도(당시 이름 '변경')였으나, 1127년 정강의 변으로 여진족의 금나라에 함락되었습니다. 이후 금나라는 몽골 제국의 침공을 받아 1214년 수도를 중도(베이징)에서 이곳 개봉으로 옮기게 됩니다. 북송 시대의 영화로움은 잃었지만, 금나라의 마지막 저항 거점으로서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1232년부터 1년 가까이 이어진 몽골군의 혹독한 포위 공격과 성내에 퍼진 전염병, 기아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함락되며 금나라 멸망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카이펑)으로 옮긴 채, 험준한 자연 방어선에 의지하여 간신히 버티고 있었습니다.
몽골군은 금나라의 견고한 황하 - 황하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자 고대 중국 문명의 요람(어떤 일이 일어나고 자라나는 근원지)입니다. 강물이 싣고 온 비옥한 황토 덕분에 일찍부터 농경 사회가 발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래와 흙이 쌓여 강바닥이 높아짐에 따라 역사적으로 수없이 범람(물이 흘러 넘침)하여 엄청난 수해를 입혔기 때문에 '중국의 슬픔'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예로부터 황하의 물길을 잘 다스리는 것(치수)은 왕조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중요한 국가 과제였습니다. 방어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남송 - 송나라는 960년부터 1279년까지 지속된 중국의 왕조입니다. 송 태조가 후주의 왕위를 찬탈하여 건국했으며, 5대 10국 시대를 종식시켰습니다.의 영토를 통과하는 대담하고 기발한 우회 작전을 펼쳤습니다. 1232년 삼봉산 전투에서 오고타이의 동생 툴루이 - 칭기즈 칸의 막내아들로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가졌으며, 삼봉산 전투를 지휘하여 금나라의 주력군을 궤멸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가 이끄는 몽골군은 눈보라가 치는 맹추위 속에서 금나라의 마지막 최정예 부대를 포위하여 전멸시켰고, 이로 인해 금나라는 군사적으로 완전히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어 몽골군은 수도 개봉을 겹겹이 포위했습니다. 1년 가까운 잔혹한 포위 공격으로 성 안은 굶주림과 전염병이 창궐했고, 금 애종 -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해가는 금나라의 마지막을 지켰으나, 끝내 몽골과 남송 연합군에 패배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운의 황제입니다.은 결국 개봉을 버리고 채주 - 채주(차이저우, 현재의 허난성 런안시)는 금나라의 마지막 황제 애종이 개봉(카이펑)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도망쳐 방어선을 구축했던 최후의 보루입니다. 1233년, 옛 영토를 되찾으려는 남송군과 몽골 제국의 연합군이 이곳을 겹겹이 포위했습니다. 치열한 공방전 끝에 1234년 채주 성벽이 뚫리고 연합군이 쏟아져 들어오자, 절망한 금 애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로써 120여 년을 이어온 여진족의 금나라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차이저우)로 달아났습니다. 몽골 제국은 옛 영토인 화북을 되찾고자 하는 남송과 동맹을 맺고, 연합군을 결성하여 애종이 숨어있는 채주 성을 함께 공격했습니다.
1234년, 몽골군과 남송군의 맹렬한 합동 공세로 마침내 채주 성벽이 뚫리고 성이 함락되었습니다. 멸망의 순간이 다가오자 절망에 빠진 금 애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한때 중국 북부를 호령했던 여진족의 금나라는 120여 년 만에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 직후 남송과 몽골은 전리품과 영토 분배를 두고 심각한 갈등을 빚으며, 새로운 거대한 전쟁의 불씨를 낳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