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지도
글꼴 크기
언어
테마

Loading Map...

Map height
Scroll Sensitivity1.0
1219년 – 1221년

칭기즈 칸의 호라즘 제국 정복 전쟁

오트라르에서 몽골 - 몽골 제국은 13세기와 14세기에 존재했던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육상 제국입니다. 동아시아의 현재 몽골 지역에서 시작된 몽골 제국은 전성기에 동쪽으로는 일본해에서 서쪽으로는 동유럽 일부까지, 북쪽으로는 북극 일부, 남쪽으로는 인도 아대륙, 동남아시아 본토, 이란 고원, 그리고 서쪽으로는 레반트와 카르파티아 산맥까지 뻗어 나갔습니다. 사절단과 상인들이 처형당한 사건에 분노한 칭기즈 칸 - 본명은 테무친으로, 몽골 초원의 여러 유목 부족을 하나로 통일하고 몽골 제국을 세웠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군사 지도자 중 한 명입니다.호라즘 제국 - 호라즘 제국은 1077년부터 1231년까지 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 이란의 넓은 지역을 통치했던 튀르크-페르시아계 수니파 이슬람 제국입니다. 초기에는 셀주크 제국과 카라키타이의 봉신국이었으나 이후 독립하여 13세기 몽골에 정복될 때까지 번영을 누렸습니다.을 응징하기 위해 벌인 대규모 정복 전쟁입니다. 몽골군의 전격적이고 무자비한 침공으로 당시 중앙아시아의 강대국이었던 호라즘 제국은 완전히 멸망했으며, 이를 통해 몽골은 서역 영토를 장악하고 향후 유럽과 중동 지역으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위치중앙아시아, 페르시아, 트랜스옥시아나
교전국몽골 제국 - 몽골 제국은 13세기와 14세기에 존재했던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육상 제국입니다. 동아시아의 현재 몽골 지역에서 시작된 몽골 제국은 전성기에 동쪽으로는 일본해에서 서쪽으로는 동유럽 일부까지, 북쪽으로는 북극 일부, 남쪽으로는 인도 아대륙, 동남아시아 본토, 이란 고원, 그리고 서쪽으로는 레반트와 카르파티아 산맥까지 뻗어 나갔습니다., 호라즘 제국 - 호라즘 제국은 1077년부터 1231년까지 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 이란의 넓은 지역을 통치했던 튀르크-페르시아계 수니파 이슬람 제국입니다. 초기에는 셀주크 제국과 카라키타이의 봉신국이었으나 이후 독립하여 13세기 몽골에 정복될 때까지 번영을 누렸습니다.
주변국서하 (탕구트 제국) - 1038년부터 1227년까지 북서 중국을 지배했던 강력한 불교 제국입니다. 실크로드의 핵심 요충지인 하서회랑을 장악하며 동서 무역의 중개자로 번성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문자 중 하나인 서하 문자는 학자 야리(Iri)가 단기간에 창제했다고 전해집니다. 유목민의 강인함과 정착 문명의 행정력을 결합하여 강력한 국력을 자랑했으며, 칭기즈 칸과 마지막까지 혈투를 벌인 나라로도 유명합니다.

전개 과정

1215년 중도 함락 이후, 칭기즈 칸 - 본명은 테무친으로, 몽골 초원의 여러 유목 부족을 하나로 통일하고 몽골 제국을 세웠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군사 지도자 중 한 명입니다.은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를 다스리는 부유한 이슬람 국가였던 호라즘 제국 - 호라즘 제국은 1077년부터 1231년까지 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 이란의 넓은 지역을 통치했던 튀르크-페르시아계 수니파 이슬람 제국입니다. 초기에는 셀주크 제국과 카라키타이의 봉신국이었으나 이후 독립하여 13세기 몽골에 정복될 때까지 번영을 누렸습니다.과 평화적인 무역 관계를 맺고 싶어 했습니다. 1218년, 칭기즈 칸은 약 450명 규모의 거대한 상인단을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호라즘의 국경 도시 오트라르의 성주 이날추크는 이들을 첩자로 의심하고 상인단을 전원 처형한 뒤 진귀한 물건들을 빼앗았습니다. 이에 칭기즈 칸이 항의하며 성주의 인도를 요구하는 사절단을 보냈으나, 호라즘의 국왕(샤) 무함마드 2세 - 제국을 크게 확장했지만 몽골의 침공으로 몰락을 맞은 호라즘 제국의 술탄입니다.는 오히려 사신의 수염을 깎아 모욕하고 머리를 잘라 돌려보냈습니다. 이 외교적 모욕에 크게 분노한 칭기즈 칸은 즉시 호라즘 제국에 대한 정벌을 선언했습니다.

1219년, 칭기즈 칸은 자신의 아들들인 주치 - 칭기즈 칸의 맏아들로, 몽골 제국의 가장 서쪽 영토를 물려받은 인물입니다. 평생 출생에 관한 논란에 휩싸였으나 중앙아시아 정복 등에서 활약했고, 그의 후손들은 킵차크 칸국(금장칸국)을 세우게 됩니다., 차가타이, 오고타이와 명장 제베 - 중앙아시아에서 동유럽까지 이어진 장거리 원정을 이끈 뛰어난 몽골 장군입니다., 수부타이 -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 지휘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20번이 넘는 원정을 지휘하며 32개 국가를 정복했고, 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의 군대를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었습니다.가 포함된 10만 이상의 대군을 모아 정벌에 나섰습니다. 몽골군 - 몽골 제국은 13세기와 14세기에 존재했던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육상 제국입니다. 동아시아의 현재 몽골 지역에서 시작된 몽골 제국은 전성기에 동쪽으로는 일본해에서 서쪽으로는 동유럽 일부까지, 북쪽으로는 북극 일부, 남쪽으로는 인도 아대륙, 동남아시아 본토, 이란 고원, 그리고 서쪽으로는 레반트와 카르파티아 산맥까지 뻗어 나갔습니다.은 사막을 우회해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들이닥치는 전격전을 펼치며 호라즘군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호라즘의 국왕 무함마드 2세는 대군을 한데 모아 맞서기보다 여러 성에 군대를 나누어 수비하는 오판을 내렸고, 이는 몽골군이 각개격파(따로따로 떼어내어 물리침)하며 도시들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몽골군의 기세는 거침없었습니다. 오트라르는 5개월간의 포위 끝에 함락되었고 성주 이날추크는 처형되었습니다. 이어 1220년 실크로드 - 실크로드(비단길)는 아주 먼 옛날 동양과 서양을 이어주던 길고 긴 무역로(물건을 사고파는 길)입니다. 중국 한나라 때부터 이 길을 통해 중국의 아주 비싸고 예쁜 '비단'이 서양으로 많이 전해졌기 때문에 '비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상인들은 낙타를 타고 사막과 산을 넘으며 향신료나 보석 같은 물건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나라의 종교나 새로운 기술,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주고받았습니다. 훗날 당나라나 몽골 제국 같은 거대한 나라들은 이 길을 안전하게 지키고 관리하면서 엄청난 부와 힘을 얻었답니다.의 핵심 도시인 부하라와 수도 사마르칸트 -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자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입니다. 712년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에 의해 정복된 후, 이슬람 학문과 상업의 주요 중심지로 번영했습니다.가 차례대로 함락되었습니다. 국왕 무함마드 2세는 공포에 질려 서쪽으로 도망쳤고, 칭기즈 칸의 추격 조로 편성된 제베와 수부타이에게 쫓기다가 결국 1220년 말 카스피해의 외딴섬에서 병사했습니다. 그의 아들 잘랄 웃딘 - 몽골군에 맞서 호라즘 제국의 마지막 항전을 이끌었으며, 인더스강을 극적으로 탈출한 용맹한 왕자이자 제국의 마지막 지배자입니다. 왕자가 패잔병을 모아 저항하며 파르완 전투에서 일부 승리를 거두기도 했으나, 결국 1221년 인더스강 전투에서 패하고 강물로 뛰어들어 기적적으로 탈출했습니다. 이로써 호라즘 제국은 완전히 멸망하고, 몽골은 서역 영토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주요 사건

1218년

오트라르 참변

📍오트라르 (카자흐스탄) (지도 보기)

호라즘의 국경 도시 오트라르의 성주 이날추크가 450명에 달하는 몽골 무역 상단을 첩자로 몰아 몰살하고 재물을 빼앗았습니다. 이에 항의하러 간 칭기즈 칸 - 본명은 테무친으로, 몽골 초원의 여러 유목 부족을 하나로 통일하고 몽골 제국을 세웠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군사 지도자 중 한 명입니다.의 사절마저 처형당하면서 몽골군 - 몽골 제국은 13세기와 14세기에 존재했던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육상 제국입니다. 동아시아의 현재 몽골 지역에서 시작된 몽골 제국은 전성기에 동쪽으로는 일본해에서 서쪽으로는 동유럽 일부까지, 북쪽으로는 북극 일부, 남쪽으로는 인도 아대륙, 동남아시아 본토, 이란 고원, 그리고 서쪽으로는 레반트와 카르파티아 산맥까지 뻗어 나갔습니다.의 분노에 불을 지폈습니다.

1219년 – 1220년

오트라르 포위전

📍오트라르 (카자흐스탄) (지도 보기)

차가타이와 오고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이 오트라르성을 포위하여 5개월간 공방을 벌였습니다. 함락 후 상인단 살해를 주도했던 성주 이날추크는 사로잡혀 처형당했습니다.

1220년

부하라 함락

📍부하라 (우즈베키스탄) (지도 보기)

칭기즈 칸이 친히 이끄는 본대가 누구도 건널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키질쿰 사막 - 키질쿰 사막은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에 걸쳐 있는 세계에서 11번째로 큰 사막입니다. 이름은 투르크어로 '붉은 모래'라는 뜻인데, 실제로 붉은빛을 띠는 고운 모래언덕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사막에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아주 오랜 옛날, 온몸이 붉은 거대한 용이 모래 아래에서 잠이 들었는데, 용이 내뿜은 따뜻한 입김 때문에 사막의 모래가 붉게 물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우치쿠두크(세 개의 우물이라는 뜻) 지역에는 어떤 병도 낫게 해주는 신비한 오아시스가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키질쿰 사막은 너무 뜨겁고 건조해서 옛날 사람들은 어떤 군대도 이곳을 통과할 수 없는 천연 성벽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1220년,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군은 호라즘 제국을 놀라게 하려고 이 험난한 사막을 가로질러 부하라 도시를 기습했습니다. 사막의 매서운 더위와 정령들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던 수비대들은 몽골군이 사막을 건너 눈앞에 나타나자 깜짝 놀라 항복하고 말았습니다.을 우회 횡단하여 부하라를 기습했습니다. 도시를 지키던 수비대는 공포에 질려 항복하였고 성곽은 철저히 허물어졌습니다.

1220년

수도 사마르칸트 함락

📍사마르칸트 (우즈베키스탄) (지도 보기)

당대 가장 웅장하고 견고하게 방비되었던 호라즘의 수도 사마르칸트 -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자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입니다. 712년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에 의해 정복된 후, 이슬람 학문과 상업의 주요 중심지로 번영했습니다.가 몽골군의 포위 공격을 받았습니다. 몽골군의 기세에 눌린 일부 수비대의 배신으로 성문이 열리며 며칠 만에 도시가 함락되었습니다.

1220년

국왕 추격전과 카스피해에서의 최후

📍카스피해 (아바스쿤섬) (지도 보기)

칭기즈 칸의 명령을 받은 제베 - 중앙아시아에서 동유럽까지 이어진 장거리 원정을 이끈 뛰어난 몽골 장군입니다.수부타이 -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 지휘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20번이 넘는 원정을 지휘하며 32개 국가를 정복했고, 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의 군대를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었습니다.가 도망친 국왕 무함마드 2세 - 제국을 크게 확장했지만 몽골의 침공으로 몰락을 맞은 호라즘 제국의 술탄입니다.를 끝까지 추격했습니다. 국왕은 밤낮으로 쫓기다 카스피해의 한 외딴섬으로 도망쳐 쓸쓸하게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1221년

인더스강 전투

📍인더스강 강가 (파키스탄) (지도 보기)

마지막 남은 호라즘의 왕자 잘랄 웃딘 - 몽골군에 맞서 호라즘 제국의 마지막 항전을 이끌었으며, 인더스강을 극적으로 탈출한 용맹한 왕자이자 제국의 마지막 지배자입니다.이 인더스강을 등지고 배수진을 쳐 몽골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패배가 확실해지자 그는 말을 탄 채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 강을 건너 탈출하는 기개를 보여주었습니다.

예술 및 유산

부하라의 칼란 미나레트

부하라의 칼란 미나레트

장인 바코, 1127년

🏛️ 부하라, 우즈베키스탄 (유네스코 세계유산)

미나레트는 예배 시간을 알리려고 세운 높은 탑이다. 이 벽돌탑은 높이 46미터로, 같은 무늬가 하나도 반복되지 않게 띠를 둘렀다. 1220년 몽골군이 부하라를 점령하며 도시 대부분이 불탔지만 이 탑은 남았다. 칭기즈 칸이 꼭대기를 보려고 고개를 젖히다 모자가 떨어지자 탑을 남기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세계 정복자의 역사

세계 정복자의 역사

아타 말리크 주바이니, 1260년경

🏛️ 프랑스 국립도서관 등에 사본 소장

주바이니는 몽골 지배자 밑에서 일하며 몽골 본토까지 두 번 다녀온 페르시아 관리였다. 그는 자기 고향 도시들이 무너지는 과정을 꼼꼼히 적었는데, 그 일을 벌인 쪽에서 일하며 쓴 기록이다. 그래서 가장 풍부한 자료이면서도 조심해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부하라 모스크의 칭기즈 칸

부하라 모스크의 칭기즈 칸

일한국 궁정 화가들, 글은 라시드 앗 딘, 14세기 초

🏛️ 집사(자미 알 타와리크) 사본, 여러 소장처

정복이 있고 80여 년 뒤, 이란을 다스린 몽골 지배자들을 위해 쓴 세계사의 한 쪽이다. 칸이 부하라의 큰 모스크 안에서 사람들에게 말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몽골은 페르시아 학자들에게 돈을 주고 자기 역사를 쓰게 했으니, 정복자의 이야기를 정복당한 쪽의 언어로 전한 셈이다.

관련 영상

몽골제국의 정복전쟁 호라즘편 몰아보기 / 몽골제국2

역사 퀴즈

1 / 5

칭기즈 칸의 분노를 일으켜 호라즘 제국 침공을 결정하게 만든 직접적인 사건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