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5년 중도 함락 이후, 칭기즈 칸은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를 다스리는 부유한 이슬람 국가였던 호라즘 제국과 평화적인 무역 관계를 맺고 싶어 했습니다. 1218년, 칭기즈 칸은 약 450명 규모의 거대한 상인단을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호라즘의 국경 도시 오트라르의 성주 이날추크는 이들을 첩자로 의심하고 상인단을 전원 처형한 뒤 진귀한 물건들을 빼앗았습니다. 이에 칭기즈 칸이 항의하며 성주의 인도를 요구하는 사절단을 보냈으나, 호라즘의 국왕(샤) 무함마드 2세는 오히려 사신의 수염을 깎아 모욕하고 머리를 잘라 돌려보냈습니다. 이 외교적 모욕에 크게 분노한 칭기즈 칸은 즉시 호라즘 제국에 대한 정벌을 선언했습니다.
1219년, 칭기즈 칸은 자신의 아들들인 주치, 차가타이, 오고타이와 명장 제베, 수부타이가 포함된 10만 이상의 대군을 모아 정벌에 나섰습니다. 몽골군은 사막을 우회해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들이닥치는 전격전을 펼치며 호라즘군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호라즘의 국왕 무함마드 2세는 대군을 한데 모아 맞서기보다 여러 성에 군대를 나누어 수비하는 오판을 내렸고, 이는 몽골군이 각개격파(따로따로 떼어내어 물리침)하며 도시들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몽골군의 기세는 거침없었습니다. 오트라르는 5개월간의 포위 끝에 함락되었고 성주 이날추크는 처형되었습니다. 이어 1220년 실크로드의 핵심 도시인 부하라와 수도 사마르칸트가 차례대로 함락되었습니다. 국왕 무함마드 2세는 공포에 질려 서쪽으로 도망쳤고, 칭기즈 칸의 추격 조로 편성된 제베와 수부타이에게 쫓기다가 결국 1220년 말 카스피해의 외딴섬에서 병사했습니다. 그의 아들 잘랄 웃딘 왕자가 패잔병을 모아 저항하며 파르완 전투에서 일부 승리를 거두기도 했으나, 결국 1221년 인더스강 전투에서 패하고 강물로 뛰어들어 기적적으로 탈출했습니다. 이로써 호라즘 제국은 완전히 멸망하고, 몽골은 서역 영토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