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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년 – 1204년

제4차 십자군 원정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시작되었으나, 엉뚱하게도 같은 기독교 국가인 비잔티움 제국 -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천 년 넘게 로마 제국을 계승한 중세 제국입니다. 1453년 멸망할 때까지 기독교와 로마법의 수호자이자 고대 지식의 보존자로 역사에 남았습니다.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침략하고 무참히 약탈해버린 전쟁입니다. 베네치아 공화국 - 강력한 해양 제국으로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기 위해 주요 섬과 항구를 지배했습니다.에 진 막대한 빚과 비잔티움 제국의 권력 다툼이 얽히면서 십자군은 본래의 목적을 잃고 돈과 권력을 쫓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비잔티움 제국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고, 서방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의 갈등은 영원히 치유될 수 없을 만큼 깊어졌습니다.

위치자라(현재 크로아티아의 자다르) 및 콘스탄티노폴리스(현재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교전국십자군 (샹파뉴, 블루아 등 프랑스 왕국 - 프랑스 왕국은 서프랑크 왕국 분열 이후 위그 카페 즉위와 함께 탄생하여, 중세 서유럽 봉건제 사회의 중심이자 십자군 원정의 선두에 섰던 기독교 왕국입니다.과 플랑드르 백국, 몽페라토 등 신성 로마 제국 - 신성 로마 제국은 962년 오토 1세의 대관식으로 시작된 중세 유럽의 제국으로, 선제후들이 황제를 뽑고 교황청과 권력을 견주었던 연합 제국입니다. 각지에서 모인 귀족과 기사들) 및 베네치아 공화국 - 강력한 해양 제국으로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기 위해 주요 섬과 항구를 지배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 -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천 년 넘게 로마 제국을 계승한 중세 제국입니다. 1453년 멸망할 때까지 기독교와 로마법의 수호자이자 고대 지식의 보존자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배경 및 맥락

1198년 - 1202년

제3차 십자군의 실패와 갚지 못한 배 삯

제3차 십자군이 예루살렘 탈환에 실패하자, 교황 인노첸시오 3세 -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교황 중 한 명으로 제4차 십자군을 제창했으나, 십자군이 기독교 도시들을 공격하자 이들을 파문했습니다.는 제4차 십자군을 제창했습니다. 십자군은 바다를 건너기 위해 해양 강국인 베네치아 공화국 - 강력한 해양 제국으로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기 위해 주요 섬과 항구를 지배했습니다.에 거대한 함대 제작을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적은 수의 병력만 모이게 되면서 십자군은 베네치아에 약속한 막대한 배 삯을 지불할 수 없었습니다. 베네치아 총독 엔리코 단돌로 - 고령의 나이와 시각 장애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 공화국을 이끌며 제4차 십자군의 방향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려 비잔티움 제국을 무너뜨린 총독(도제)입니다.는 빚을 갚는 대신, 베네치아의 경쟁 도시인 자라(Zara)를 공격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1195년

비잔티움 제국의 황위 찬탈 사건

1195년, 비잔티움 제국 -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천 년 넘게 로마 제국을 계승한 중세 제국입니다. 1453년 멸망할 때까지 기독교와 로마법의 수호자이자 고대 지식의 보존자로 역사에 남았습니다.의 황제 이사키오스 2세는 친형인 알렉시오스 3세의 반역으로 인해 두 눈이 뽑히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황위를 찬탈한 알렉시오스 3세의 감시를 피해 가까스로 서유럽으로 탈출한 이사키오스 2세의 아들, 알렉시오스 4세 앙겔로스 - 숙부를 몰아내고 황제가 되기 위해 십자군에게 막대한 보상을 약속하여,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방향을 돌리게 만든 비잔티움 제국의 황자입니다.는 아버지를 구출하고 빼앗긴 황위를 되찾기 위해 자신을 도와 숙부를 몰아낼 강력한 군대를 찾아다녔습니다.

전개 과정

1202년, 베네치아 공화국 - 강력한 해양 제국으로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기 위해 주요 섬과 항구를 지배했습니다.에 막대한 빚을 진 십자군은 배 삯을 갚기 위해 같은 가톨릭을 믿는 기독교 도시 '자라(현재의 자다르)'를 공격했습니다. 십자군이 성지를 되찾기는커녕 기독교 형제들을 공격했다는 소식에 교황 인노첸시오 3세 -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교황 중 한 명으로 제4차 십자군을 제창했으나, 십자군이 기독교 도시들을 공격하자 이들을 파문했습니다.는 크게 분노하여 십자군 전체를 파문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십자군 지휘부는 일반 병사들이 동요할까 봐 파문 사실을 숨긴 채 원정을 계속했습니다. 자라에서 겨울을 보내던 십자군에게 비잔티움 제국 -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천 년 넘게 로마 제국을 계승한 중세 제국입니다. 1453년 멸망할 때까지 기독교와 로마법의 수호자이자 고대 지식의 보존자로 역사에 남았습니다.의 황자 알렉시오스 4세 앙겔로스 - 숙부를 몰아내고 황제가 되기 위해 십자군에게 막대한 보상을 약속하여,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방향을 돌리게 만든 비잔티움 제국의 황자입니다.가 찾아왔습니다. 숙부에게 황위를 빼앗긴 그는 십자군이 자신을 도와 황제로 만들어 주면, 엄청난 양의 은화와 군수 물자를 제공하고 비잔티움 교회를 교황의 밑으로 들어가게 하겠다는 매혹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돈이 절실했던 십자군과 이익에 밝았던 베네치아인들은 이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고 함대의 뱃머리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렸습니다.

1203년, 십자군 함대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크고 부유했던 도시인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했습니다. 도시를 둘러싼 3중 성벽(테오도시우스 성벽 -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보호하기 위해 5세기에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가 건설한 거대한 방어용 성벽입니다.안쪽부터 바깥쪽으로 내성벽, 외성벽, 해자(물이 채워진 구덩이)로 이루어진 견고한 3중 방어선을 갖추고 있어 중세 시대 가장 완벽하고 난공불락인 요새로 평가받았습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랍, 불가르, 루스 등 수많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제국을 지켜냈으나, 1204년 제4차 십자군 원정 때 바다 쪽 성벽이 뚫리면서 처음으로 함락되었고, 1453년 오스만 제국의 대형 대포 공격에 3중 성벽 자체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으나, 90세가 넘은 눈먼 베네치아 총독 엔리코 단돌로 - 고령의 나이와 시각 장애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 공화국을 이끌며 제4차 십자군의 방향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려 비잔티움 제국을 무너뜨린 총독(도제)입니다.가 직접 뱃머리에 서서 용감하게 바다 쪽 성벽을 공격하여 함락시켰습니다. 황위를 찬탈했던 숙부 알렉시오스 3세가 도망가고 알렉시오스 4세가 새로운 황제로 즉위했지만, 비잔티움 제국의 금고는 이미 텅 비어 있었습니다. 알렉시오스는 십자군에게 약속한 돈을 줄 수 없었고, 무리하게 세금을 거두고 교회의 보물들을 녹여 돈을 만들려다 시민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결국 알렉시오스 4세는 암살당했고, 새롭게 황제가 된 알렉시오스 5세 두카스는 십자군에게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약속받은 돈을 받지 못한 데다 황제까지 살해당하자 분노한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무력으로 빼앗기로 결심했습니다. 1204년 4월, 십자군은 다시 한번 총공격을 감행했고 결국 성벽을 뚫고 도시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습니다. 이후 3일 동안 중세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 중 하나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이 벌어졌습니다. 기독교 성기사라 불리던 십자군은 같은 기독교도를 잔혹하게 학살하고, 성 소피아 대성당을 비롯한 거룩한 교회들을 무참히 파괴하고 약탈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귀중한 조각상들은 녹여져 동전이 되었고, 엄청난 보물들이 베네치아로 빼돌려졌습니다. 비잔티움 제국은 무너졌고 십자군은 그 자리에 '라틴 제국'을 세웠습니다. 제4차 십자군은 원래 목표였던 예루살렘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했지만, 천 년의 역사를 지닌 비잔티움 제국에 치명상을 입혔고 동방 정교회와 서방 가톨릭 교회의 화해를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요 사건

1202년

자라(자다르) 공방전

📍자라 (크로아티아 자다르) (지도 보기)

베네치아 - 강력한 해양 제국으로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기 위해 주요 섬과 항구를 지배했습니다.에 빚진 배 삯을 갚기 위해, 십자군은 같은 기독교인 가톨릭 도시인 자라를 무력으로 점령했습니다. 십자군이 성지가 아닌 기독교 도시를 공격하자 교황은 십자군 전체를 파문했습니다.

1203년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콘스탄티노폴리스 (지도 보기)

알렉시오스 4세 앙겔로스 - 숙부를 몰아내고 황제가 되기 위해 십자군에게 막대한 보상을 약속하여,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방향을 돌리게 만든 비잔티움 제국의 황자입니다.를 황제로 세우기 위해 십자군과 베네치아 함대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했습니다. 눈먼 고령의 총독 엔리코 단돌로 - 고령의 나이와 시각 장애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 공화국을 이끌며 제4차 십자군의 방향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려 비잔티움 제국을 무너뜨린 총독(도제)입니다.가 직접 상륙을 지휘하여 바다 쪽 성벽을 돌파했고, 황위를 찬탈했던 알렉시오스 3세는 도주했습니다.

1204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과 대약탈

📍콘스탄티노폴리스 (지도 보기)

약속된 돈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알렉시오스 4세가 살해당하고, 새 황제 알렉시오스 5세 두카스가 지불을 거절하자 십자군은 다시 도시를 공격해 성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이후 3일 동안 십자군은 비잔티움 제국 -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천 년 넘게 로마 제국을 계승한 중세 제국입니다. 1453년 멸망할 때까지 기독교와 로마법의 수호자이자 고대 지식의 보존자로 역사에 남았습니다.의 수도를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파괴하며 수많은 문화재와 성물을 훼손했습니다.

예술 및 유산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입성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입성

외젠 들라크루아, 1840년

🏛️ 루브르 박물관, 파리

말을 탄 십자군 기사들이 불타는 도시로 들어오고, 시민들은 자비를 구하고 있다. 사건이 있고 600년도 더 지나 그려진 이 그림에서 들라크루아는 승리의 순간이 아니라 정복당한 사람들의 슬픔을 담았다. 십자군을 패자의 눈으로 바라본 보기 드문 작품이다.

산마르코의 청동 말

산마르코의 청동 말

고대의 조각가 (작자 미상), 고대 (1204년 베네치아로 이동)

🏛️ 산마르코 대성당, 베네치아

원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전차 경기장을 장식하던 청동 말 네 마리. 1204년 십자군이 베네치아로 가져갔고,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다. 이 전쟁의 약탈품을 오늘날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관련 영상

제4차 십자군 전쟁. 가장 어이 없는 원정

역사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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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십자군 원정에 필요한 거대한 함대를 만들어 주고, 십자군이 자신들에게 진 빚을 이용해 원정의 방향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리게 한 이탈리아의 해양 공화국은 어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