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크 샤이반 왕조의 건국자
"칼과 활로 세상을 얻었으니, 이제 학문과 법도로 제국을 다스릴 것이다."— 사마르칸트를 장악하고 티무르 제국의 학자들과 문인들을 후원하며
무함마드 셰이바니 칸(1451년 ~ 1510년)은 칭기즈 칸의 맏아들 주치의 후손이자, 유목 우즈베크 부족들을 통합하여 티무르 제국을 무너뜨리고 중앙아시아를 통일한 샤이반 왕조의 초대 대칸입니다.
셰이바니는 1451년 킵차크 초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문은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주치의 다섯째 아들인 샤이반의 혈통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이자 강력한 군주였던 아불 하이르 칸이 사망한 후 우즈베크 부족 연맹이 와해되자, 셰이바니는 가족과 함께 쫓겨나 부하라와 사마르칸트 주변을 떠도는 험난한 망명 생활을 겪었습니다. 그는 고난 속에서도 뛰어난 무용과 지략, 이슬람 신학과 문학에 대한 깊은 교양을 쌓았습니다.
청년이 된 셰이바니는 분열되어 있던 우즈베크 유목 전사들을 규합하여 강력한 군대를 조직했습니다. 당시 중앙아시아의 티무르 제국은 군주들 간의 끝없는 왕위 쟁탈전과 내분으로 급격히 쇠퇴하고 있었습니다. 셰이바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시르다리야강을 건너 대규모로 남하하여, 1500년 티무르 제국의 영광스러운 수도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차례로 점령했습니다.
젊은 바부르가 조상 티무르의 수도를 되찾기 위해 반격을 가해 사마르칸트를 일시 탈환하자, 셰이바니는 1501년 사르이 풀 전투에서 바부르군을 완파하고 사마르칸트를 포위하여 끝내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이어 페르가나와 타슈켄트마저 장악하며 바부르를 힌두쿠시산맥 너머 카불로 쫓아냈습니다. 1507년에는 티무르 제국의 마지막 문화 중심지였던 헤라트마저 함락시켜, 130여 년간 이어진 티무르 제국을 완전히 멸망시켰습니다.
셰이바니 칸은 정복자였을 뿐만 아니라 튀르크어와 페르시아어로 시를 짓고 신학 논쟁을 즐긴 학식 높은 군주였습니다. 그는 사마르칸트에 화려한 마드라사(이슬람 학교)를 세우고 학자들을 후원했습니다. 그러나 서쪽에서 급부상한 페르시아 사파비 제국의 창건자 샤 이스마일 1세와 호라산의 패권을 두고 충돌했습니다. 1510년 마르브 전투에서 셰이바니는 이스마일의 유인 작전에 속아 포위되어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스마일 1세는 그의 해골에 금박을 입혀 승리의 축배를 드는 술잔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비록 그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지만, 그가 세운 샤이반 왕조는 이후 수세기 동안 중앙아시아를 통치하는 강력한 우즈베크 칸국들의 모태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