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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부르

무굴 제국의 초대 황제 (파디샤)

티무르 왕조 / 무굴 제국 1483년 ~ 1530년 (나이: 47세)
"세상은 이를 누리는 자의 것이니, 결코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
— 자서전 《바부르나마》에서 끊임없는 시련을 이겨내며 남긴 교훈

생애

바부르(1483년 ~ 1530년, 본명: 자히르 앗딘 무함마드)는 티무르 왕조의 왕자이자 인도 아대륙에 300여 년간 이어진 대제국인 무굴 제국을 건국한 초대 황제(파디샤)입니다.

탄생과 페르가나에서의 어린 시절

바부르는 1483년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동부의 페르가나 분지 안디잔에서 태어났습니다. 친가로는 정복자 티무르의 5대손이었고, 외가로는 몽골 제국의 창건자 칭기즈 칸의 후손이었습니다. '바부르'라는 별칭은 페르시아-튀르크어로 '호랑이'를 뜻합니다. 1494년 불과 12세의 나이에 아버지가 비둘기장에서 사고로 급서하자 페르가나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어린 군주였던 바부르는 즉위 직후부터 친척 영주들의 배신과 권력 다툼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사마르칸트 쟁탈전과 방랑의 고난

바부르는 조상 티무르의 영광이 깃든 위대한 수도 사마르칸트를 되찾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었습니다. 1497년 15세의 나이로 사마르칸트를 처음 점령했으나, 본국 페르가나에서 반란이 일어나 두 도시를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이후 사마르칸트를 두 차례 더 탈환했지만, 북방 초원에서 내려온 무함마드 셰이바니 칸의 우즈베크족 군대에 밀려 번번이 쫓겨났습니다. 모든 영토와 추종자들을 잃고 힌두쿠시산맥의 눈 덮인 험로를 헤매던 절망적인 유랑 시절에도 그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카불 장악과 새로운 제국의 도약대

1504년, 바부르는 불과 수백 명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을 이끌고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을 기습 점령하여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했습니다. 카불의 맑은 공기와 풍요로운 과수를 사랑했던 바부르는 이곳에 아름다운 페르시아식 정원을 가꾸며 국력을 키웠습니다. 중앙아시아 수복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그는 풍요로운 평원이 펼쳐진 남쪽의 인도 아대륙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인도 침공과 3대 결전 (파니파트·칸와·고그라)

1526년, 델리 술탄국의 내분을 틈타 인도로 진군한 바부르는 제1차 파니파트 전투에서 700대의 수레 바리케이드와 오스만 제국식 최신 야전 대포, 화승총을 활용해 이브라힘 로디의 10만 대군과 전투 코끼리 부대를 완파했습니다. 이어 1527년 칸와 전투에서는 메와르의 라나 상가가 이끄는 강력한 라지푸트 기병 연합군을 대포와 화승총 일제 사격으로 격파했습니다. 1529년 고그라 전투에서 벵골-아프간 연합군마저 수륙 합동 포격전으로 제압하며 북인도 전역의 패권을 확립했습니다.

문학적 유산과 최후, 무덤의 전설

바부르는 뛰어난 군사령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섬세한 감성을 지닌 시인이자 탁월한 문인이었습니다. 차가타이 튀르크어로 집필한 자서전 《바부르나마》는 솔직한 인간적 고백과 군사 기록, 동식물에 대한 관찰을 담은 세계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1530년 아들 후마윤이 심한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바부르는 아들의 침상 주위를 세 바퀴 돌며 "내 목숨을 대신 바칠 터이니 아들을 살려주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아들은 건강을 되찾았으나 바부르는 시름시름 앓다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그가 평생 가장 사랑했던 카불의 '바부르의 정원'에 안장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