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론에서 갑작스러운 병으로 사망하자, 알렉산더 휘하의 장군들은 필리포스 3세 아르리다이오스와 유아 왕 알렉산더 4세를 공동 왕으로 옹립하여 제국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실권은 섭정인 페르디카스가 장악했는데, 알렉산더가 죽기 전 병상에서 직접 인장을 맡긴 인물로 천인대장으로서 국정을 운영하며 중앙 권력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2년만에 제1차 디아도코이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페르디카스가 알렉산더의 누이와 결혼하여 권력을 독점하려 하자, 안티파트로스, 크라테로스, 프톨레마이오스가 연합하여 대항했습니다. 특히 프톨레마이오스가 마케도니아로 향하던 알렉산더의 시신 운구 행렬을 강탈해 이집트로 가져가면서 전쟁이 촉발되었습니다. 당시 시신을 소유하는 자가 정통성을 가진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를 이용해 자신의 지배권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페르디카스는 이에 보복하기 위해 이집트를 침공했으나 나일강 도하 작전에 실패하며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결국 그는 피톤, 안티게네스, 셀레우코스 등 부하 장교들에게 암살당했고, 이는 제국의 더 큰 분열을 초래했습니다.
페르디카스 사후 트리파라데이소스 회의에서 안티고노스 1세는 아시아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에우메네스를 비롯한 페르디카스의 잔존 세력을 토벌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에우메네스를 격파한 후, 안티고노스는 아시아의 광대한 영토와 왕실 보물을 장악하며 가장 강력한 인물로 급부상했습니다. 제국 전체를 지배하려는 그의 야망과 급격한 세력 확장은 다른 디아도코이들(리시마코스, 셀레우코스, 카산드로스, 프톨레마이오스)을 위협했고, 이들은 결국 안티고노스를 저지하기 위해 연합 전선을 형성했습니다.
이러한 권력 투쟁 속에서 아르게아드 왕실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기원전 317년, 필리포스 3세 아르리다이오스는 손자의 권리를 지키려던 알렉산더 대왕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에게 붙잡혀 처형당했습니다. 그러나 유아 왕 알렉산더 4세와 그의 어머니 록사네 또한 이후 카산드로스에게 감금되었습니다. 기원전 310년경, 카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 통치권을 확보하고 마지막 정통 후계자를 없애기 위해 이들을 독살하거나 교살하여 암살했습니다. 이 암살을 통해 카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 왕을 선언했습니다.
안티고노스의 제국 통일 야망은 결국 '안티고노스 대 나머지 장군들'이라는 거대한 대결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카산드로스, 리시마코스, 셀레우코스, 프톨레마이오스는 연합 전선을 구축하여 그에 맞섰고, 기원전 301년 이프수스 전투 에서 격돌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안티고노스가 전사하면서 제국 통일의 꿈은 무너졌습니다. 승리한 연합 세력은 영토를 나눠 가졌는데, 셀레우코스는 아시아 대부분(셀레우코스 영역)을, 리시마코스는 소아시아 서부(리시마코스 영역)를,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집트 지배권(프톨레마이오스 영역)을 굳혔습니다.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승자들 사이의 갈등이 다시 불거졌습니다. 기원전 281년 코루페디온 전투 에서 셀레우코스가 리시마코스를 격파하며 마지막 패권 경쟁이 끝나는 듯했으나, 셀레우코스는 리시마코스를 꺾고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려는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자신에게 의탁하고 있던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에게 배신당해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케라우노스는 셀레우코스의 도움을 받아 지내고 있었지만,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고 싶은 욕심에 자신의 은인을 죽인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알렉산더의 제국을 다시 하나로 합치려던 노력은 영원히 끝이 났습니다. 거대했던 제국은 결국 마케도니아(그리스), 아시아(셀레우코스), 이집트(프톨레마이오스)라는 세 개의 큰 나라로 쪼개져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