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니 - 파르니는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남하한 부족입니다. 아르사케스가 이끄는 아르사케스 왕조(파르티아 왕국)의 핵심 세력이 되었습니다.족의 지도자 아르사케스 - 아르사케스 1세는 유목민 부족인 파르니족을 이끌고 파르티아 지역을 정복하여 '파르티아 제국'을 세운 왕입니다.는 파르티아 - 이란 북동부의 역사적 지역입니다. 파르티아 제국(아르사케스 왕조)을 세운 파르니 부족의 근거지였으며, 뛰어난 기마술로 유명했습니다. 이곳에서 시작된 제국은 훗날 로마와 경쟁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의 혼란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안드라고라스 - 기원전 245년경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티오코스 2세에 반기를 들고 독립을 선언한 파르티아의 총독(사트라프)입니다. 그의 반란으로 지역 방어가 약해진 틈을 타 아르사케스 1세와 파르니 부족이 파르티아를 침공했고, 그를 패배시키며 파르티아 제국을 건설했습니다.가 고립되어 약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247년, 아르사케스는 전사들을 이끌고 국경을 넘었습니다. 이들은 평범한 병사가 아니었습니다. 중장기병 '카타프락토이 - 파르티아, 사산 왕조 페르시아 등 동방 제국과 나중에 로마, 비잔티움 제국이 운용한 중장기병입니다. 기수와 말 모두 비늘 갑옷이나 사슬 갑옷으로 완전히 무장하여 고대의 탱크와 같았습니다. 긴 창(Contos)을 들고 적진으로 돌격해 진형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했습니다.'와 후퇴하면서도 치명적인 화살을 날릴 수 있는 기마 궁수들이었으며, 이 기술은 훗날 로마 군대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침공은 신속하고 잔혹했습니다. 황제를 배신했던 안드라고라스를 도와줄 동맹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르사케스는 그를 격파하고 죽인 뒤 파르티아 지역을 차지했습니다.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르사케스는 아사크 - 파르티아 제국의 시조 아르사케스 1세가 왕위에 오른 신성한 도시입니다. 이곳에는 아르사케스 왕조의 영원한 불꽃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며 왕권과 신의 가호를 상징했습니다.에서 왕위에 올랐고, 새 왕조를 기리는 영원한 불꽃이 점화되었습니다.
셀레우코스 황제 셀레우코스 2세가 뒤늦게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습니다. 파르니족은 이제 '파르티아인'이라는 이름을 쓰고 히르카니아 - 카스피해 남동쪽에 위치한 고대 지역으로, 현재의 이란 북부와 투르크메니스탄에 해당합니다. 이름은 고대 페르시아어 '바르카나(Varkana)'에서 유래했으며 '늑대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울창한 숲이 우거진 비옥한 지역으로, 아케메네스 제국과 셀레우코스 제국의 중요한 속주였다가 파르티아 왕국에 흡수되었습니다.의 험준한 지형에 요새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험한 산악 지형과 빠른 기동력을 이용해 무거운 그리스 장창 부대(팔랑크스 - 고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중장보병 밀집 대형입니다. 방패를 겹치고 창을 숲처럼 내밀어 견고한 방어벽을 형성했습니다.)를 농락했습니다. 파르티아의 승리는 완벽했고, 그들은 기원전 247년을 아르사케스 시대의 원년으로 삼아 영원히 기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