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족 요나라의 가혹한 착취에 맞서 완안아골타 - 여진족을 하나로 통합하고 강압적인 요나라의 지배에 용감히 맞서 싸워 금나라를 세운 전설적인 영웅이자 초대 황제입니다.가 1114년 거병하였고, 1115년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금나라 - 1115년부터 1234년까지 중국 북부와 동북부 지역을 통치했던 여진족의 왕조입니다. 창건자 아구다는 '철(요나라)은 녹슬지만 금(금나라)은 결코 변하지 않고 순수하다'는 전설적인 선언과 함께 국호를 '금'으로 정했다고 전해집니다. 강력한 철갑기병 정예군을 앞세워 번성했으나, 결국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 제국에 의해 멸망했습니다.를 세웠습니다. 아골타가 이끄는 군대는 머릿수는 적었지만 기강이 단단하고 용맹한 여진족 철갑 기병들이었습니다. 1115년 요나라 황제 천조제 - 정치보다 사냥을 더 좋아하고 나라를 잘 돌보지 못해, 신흥 금나라의 강력한 기세에 부딪혀 거란족의 요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끈 요나라의 마지막 황제입니다.가 대군을 이끌고 정벌에 나섰으나, 요나라 황실 종친인 야율장노가 후방에서 반란을 일으켜 천조제를 폐위시키려 시도했습니다. 이 소식에 요나라 대군은 심각한 공포와 내분에 휩싸여 황급히 회군을 결정했습니다. 아골타가 이 퇴각 틈을 타 기습적인 추격전을 감행하면서 호보답강 전투가 발생하였고, 금나라의 2만 기병은 요나라의 대군(금나라 기록 70만 명, 거란국지 15만 명)을 상대로 번개 같은 돌격 전술을 펼치며 기적적인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온몸을 쇠 갑옷으로 둘러싸 돌진하는 금나라 기병들은 요나라 군대를 무참히 짓밟았고, 마침내 1120년에는 요나라의 심장부인 상경 임황부성까지 단숨에 함락시켰습니다. 이러한 금나라의 파죽지세와 같은 성장을 지켜본 송나라 - 송나라는 960년부터 1279년까지 지속된 중국의 왕조입니다. 송 태조가 후주의 왕위를 찬탈하여 건국했으며, 5대 10국 시대를 종식시켰습니다.는 오랫동안 빼앗겼던 연운 16주 - 만리장성 남쪽의 연경(베이징)과 대동을 포함한 16개 주를 말하며, 북방 유목민의 침략을 막아주는 천혜의 방어선이었습니다. 936년 후진의 석경당이 건국 지원의 대가로 거란(요나라)에 영구히 넘겨주면서 이후 수백 년간 중원 왕조와 북방 민족 사이의 거대한 분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송나라에게 이 땅을 되찾는 것은 국가적 자존심이자 생존이 걸린 문제였으나, 수차례의 대규모 북벌에도 불구하고 결국 거란의 지배권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땅을 되찾기 위해 금나라와 비밀리에 해상의 맹약 - 해상의 맹은 1120년, 북송과 새롭게 떠오르던 금나라(여진족)가 거란족의 요나라를 앞뒤에서 함께 공격하기로 맺은 비밀 군사 동맹입니다.당시 두 나라 사이에는 요나라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육지로 사신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신들은 산둥반도에서 배를 타고 발해만을 건너 랴오둥반도로 가는 험난한 바닷길을 통해 비밀스럽게 연락을 주고받았고, 이 때문에 '바다 위에서 맺은 약속(해상의 맹)'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동맹의 조건은 송나라가 원래 요나라에 바치던 막대한 돈과 비단을 금나라에 주는 대신, 요나라가 차지하고 있던 송나라의 옛 영토(연운십육주)를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동맹은 훗날 송나라 군대의 끔찍한 무능력을 금나라에게 들키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금나라가 송나라를 침략하는 끔찍한 재앙(정강의 변)으로 이어지게 됩니다.을 맺고 요나라를 남북으로 협공하기로 하였습니다. 송나라는 동관 - 북송 휘종 황제 시절 군사 권력을 장악했던 환관 출신의 장군입니다. 요나라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큰 패배를 겪었으며, 훗날 북송을 몰락으로 이끈 간신들인 '육적' 중 한 명으로 지목되어 처형되었습니다. 장군이 이끄는 대군을 요나라 남경(현재의 베이징 부근)으로 진격시켰습니다.
그러나 송나라 군대는 극심한 군사적 무능함을 드러내며, 금나라에게 쫓겨 멸망 직전이던 요나라의 잔여 방어군에게조차 연전연패하는 굴욕을 겪었습니다. 결국 송나라는 제 힘으로 연운 16주를 차지하지 못하고, 금나라 군대에게 은밀히 돈을 주며 요나라의 남경을 대신 정복해 달라고 구걸하는 처량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금나라는 송나라의 처참한 군사적 실체를 낱낱이 파악하였고, 이는 훗날 송나라를 침공하여 북송을 멸망시키는 정강의 변 - 1127년 여진족의 금나라 군대가 송나라의 수도였던 개봉(카이펑)을 함락시키고 황실 사람들을 사로잡아 가면서 북송이 멸망하게 된 엄청난 역사적 사건입니다. 금나라 군대는 수도에 있던 막대한 금은보화를 빼앗았고, 당시 황제였던 흠종과 그의 아버지였던 예술가 황제 휘종을 비롯해 수천 명의 왕족과 귀족, 기술자들을 포로로 묶어 북쪽 땅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는 송나라 역사상 가장 큰 부끄러움과 슬픔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정강'은 당시 흠종 황제가 쓰던 연호(연도를 세는 이름)였습니다. 수도를 빼앗기고 황제들까지 포로로 잡혀간 비극은 송나라 백성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이로 인해 악비 장군과 같은 애국지사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참사 이후 살아남은 황실 가족들은 강남(양쯔강 이남) 지역으로 피난을 떠나 남송을 새로 세우게 됩니다.의 결정적 불씨가 되었습니다.
금나라 군대는 거침없이 요나라의 상경, 중경, 서경을 차례대로 함락시켰습니다. 요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천조제는 서쪽 사막 지대로 도망치며 필사적인 저항을 시도했으나, 결국 1125년 금나라 군대에 생포당하면서 200년 동안 동북아시아를 호령하던 거란족의 요나라는 영구적으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이 멸망으로 요나라 황족 야율대석은 서쪽으로 탈출해 서요(카라 키타이)를 세워 명맥을 잇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