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 후반,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 -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천 년 넘게 로마 제국을 계승한 중세 제국입니다. 1453년 멸망할 때까지 기독교와 로마법의 수호자이자 고대 지식의 보존자로 역사에 남았습니다.)은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는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새롭게 떠오른 튀르크계 이슬람 국가인 셀주크 제국 - 셀주크 제국은 중앙아시아에서 아나톨리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며 이슬람 세계의 술탄 통치 체제를 확립하고, 비잔티움을 압박하여 십자군 전쟁의 배경이 된 중세 튀르크 제국입니다.이 동로마의 핵심 영토였던 아나톨리아 반도(오늘날의 튀르키예)를 대부분 빼앗고 수도 앞까지 쳐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다급해진 동로마 황제 알렉시오스 1세는 서유럽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 - 1088년부터 1099년까지 가톨릭 교회를 이끌었으며, 제1차 십자군 원정을 촉발한 교황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는 이슬람 세력에게 위협받는 기독교인들을 돕고 성지 예루살렘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3대 종교에서 모두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중동의 고대 도시입니다. 십자군 전쟁 당시 십자군과 이슬람 세력이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핵심 목표물이었습니다.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며, 이슬람교에서는 선지자 무함마드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해지는 바위 사원(황금 돔)과 알 아크사 사원이 있는 성지입니다. 유대교에서는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이자 신성한 성전이 서 있던 중심지입니다.이 도시에는 흥미로운 전설들이 전해집니다.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황후가 진짜 성십자가를 찾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세 개의 십자가를 발견했습니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병에 걸린 여인에게 십자가를 갖다 대었더니, 세 번째 십자가가 닿는 순간 여인의 병이 기적처럼 나았다는 신비한 치유 전설이 있습니다. 또한 이슬람 전설에 따르면 무함마드가 날개 달린 말인 부라크를 타고 메카에서 예루살렘의 아크사 사원으로 날아와 하늘로 승천하는 밤의 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을 되찾자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연설을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1차 십자군은 한 나라의 정규군이 아니라 프랑스, 신성 로마 제국 - 신성 로마 제국은 962년 오토 1세의 대관식으로 시작된 중세 유럽의 제국으로, 선제후들이 황제를 뽑고 교황청과 권력을 견주었던 연합 제국입니다., 이탈리아 등 각지에서 모여든 기사들과 귀족, 평민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연합군이었습니다. 이들은 미지의 동방을 향해 멀고 험난한 모험을 떠났습니다.
십자군의 행군은 치열한 전투와 예상치 못한 사건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들은 먼저 동로마 제국을 도와 니케아라는 도시를 되찾은 뒤, 덥고 척박한 시리아 지역으로 진군했습니다. 가는 도중 십자군의 지도자 중 한 명인 보두앵은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에데사라는 도시를 돕게 되었습니다. 그는 1098년 그곳의 지배자가 되어 에데사 백국 - 에데사 백국은 제1차 십자군 원정 중이던 1098년, 불로뉴의 보두앵에 의해 가장 먼저 세워진 십자군 국가입니다. 메소포타미아 북부 내륙에 위치하여 십자군 국가 중 영토가 가장 넓었으나 인구는 가장 적었고, 유일하게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내륙국이었습니다. 1144년 이슬람 지도자 장기(Zengi)에게 함락되며 십자군 국가 중 가장 먼저 멸망했고, 이는 제2차 십자군 원정을 촉발하는 핵심 계기가 되었습니다.을 세웠는데, 이것이 십자군이 세운 첫 번째 나라였습니다. 한편 십자군 본대는 거대한 요새 도시인 안티오크에서 무려 8개월 동안이나 굶주림과 전염병에 시달리며 힘든 포위전을 치렀습니다. 기적적으로 안티오크를 함락시킨 후, 또 다른 지도자인 보에몽이 이곳에 남아 다스리기로 하면서 두 번째 십자군 국가인 안티오크 공국 - 안티오크 공국은 제1차 십자군 원정 중이던 1098년, 길고 처절했던 안티오크 공방전 끝에 타란토의 보에몽이 세운 십자군 국가입니다. 오늘날의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해안에 걸쳐 있었으며, 지중해 무역과 군사적 요충지로서 지역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1268년 맘루크 왕조에게 함락될 때까지 존속했습니다.이 탄생했습니다.
1099년 여름, 숱한 고생 끝에 살아남은 십자군은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예루살렘 성벽 앞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국가 파티마 왕조 - 파티마 왕조는 이집트를 중심으로 북아프리카 일대를 지배하며 오늘날의 카이로를 건설하고 시아파 교리를 내세워 번영을 누렸던 이슬람 칼리프 제국입니다.가 굳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십자군은 거대한 나무 공성탑을 만들어 한 달간의 치열한 공격 끝에 성벽을 뛰어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점령 직후 성 안에서는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을 겨냥한 끔찍한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이는 오랜 행군과 굶주림으로 쌓인 병사들의 분노가 폭발한 데다, 자신들의 성지를 이교도로부터 '정화'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종교적 믿음이 겹쳐 일어난 비극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손에 넣은 십자군은 이 땅을 다스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나라인 예루살렘 왕국 - 예루살렘 왕국은 1099년 제1차 십자군 원정에 성공한 서유럽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레반트 남부(오늘날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일대)에 세운 십자군 국가입니다. 십자군 국가들 중 가장 핵심적이고 상징적인 국가로, 기독교 제일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다스렸습니다. 첫 번째 통치자인 고드프루아 드 부용은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신 곳에서 황금 왕관을 쓸 수 없다며 '성묘 수호자'를 자처했으나, 그의 사후 동생인 보두앵 1세가 뒤를 이어 최초의 예루살렘 국왕으로 정식 즉위했습니다. 이 왕국은 약 2세기 동안 중동의 주요 세력으로 자리 잡으며 기독교 성지를 수호하고 유럽과 중동 문화를 잇는 독특한 융합의 장이 되었으나, 살라딘을 비롯한 주변 이슬람 세력의 거센 반격과 압박 끝에 1291년 마지막 요새인 아크레가 함락되면서 최종적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을 세웠습니다. 첫 번째 지배자로 추대된 고드프루아 드 부용 - 제1차 십자군 원정의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인 프랑크족 기사로, 예루살렘 왕국의 첫 번째 지배자가 된 인물입니다.은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신 곳에서 황금 왕관을 쓸 수 없다며 왕의 칭호를 거부하고 '성묘 수호자'를 자처했습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원정을 성공시킨 1차 십자군 전쟁은 중동 지역의 지도를 완전히 바꿔놓으며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