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 후반,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은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는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새롭게 떠오른 튀르크계 이슬람 국가인 셀주크 제국이 동로마의 핵심 영토였던 아나톨리아 반도(오늘날의 튀르키예)를 대부분 빼앗고 수도 앞까지 쳐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다급해진 동로마 황제 알렉시오스 1세는 서유럽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이슬람 세력에게 위협받는 기독교인들을 돕고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자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연설을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1차 십자군은 한 나라의 정규군이 아니라 프랑스, 신성 로마 제국, 이탈리아 등 각지에서 모여든 기사들과 귀족, 평민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연합군이었습니다. 이들은 미지의 동방을 향해 멀고 험난한 모험을 떠났습니다.
십자군의 행군은 치열한 전투와 예상치 못한 사건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들은 먼저 동로마 제국을 도와 니케아라는 도시를 되찾은 뒤, 덥고 척박한 시리아 지역으로 진군했습니다. 가는 도중 십자군의 지도자 중 한 명인 보두앵은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에데사라는 도시를 돕게 되었습니다. 그는 1098년 그곳의 지배자가 되어 에데사 백국을 세웠는데, 이것이 십자군이 세운 첫 번째 나라였습니다. 한편 십자군 본대는 거대한 요새 도시인 안티오크에서 무려 8개월 동안이나 굶주림과 전염병에 시달리며 힘든 포위전을 치렀습니다. 기적적으로 안티오크를 함락시킨 후, 또 다른 지도자인 보에몽이 이곳에 남아 다스리기로 하면서 두 번째 십자군 국가인 안티오크 공국이 탄생했습니다.
1099년 여름, 숱한 고생 끝에 살아남은 십자군은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예루살렘 성벽 앞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국가 파티마 왕조가 굳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십자군은 거대한 나무 공성탑을 만들어 한 달간의 치열한 공격 끝에 성벽을 뛰어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점령 직후 성 안에서는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을 겨냥한 끔찍한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이는 오랜 행군과 굶주림으로 쌓인 병사들의 분노가 폭발한 데다, 자신들의 성지를 이교도로부터 '정화'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종교적 믿음이 겹쳐 일어난 비극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손에 넣은 십자군은 이 땅을 다스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나라인 예루살렘 왕국을 세웠습니다. 첫 번째 지배자로 추대된 고드프루아 드 부용은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신 곳에서 황금 왕관을 쓸 수 없다며 왕의 칭호를 거부하고 '성묘 수호자'를 자처했습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원정을 성공시킨 1차 십자군 전쟁은 중동 지역의 지도를 완전히 바꿔놓으며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