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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5년 – 1099년

제1차 십자군 전쟁

제1차 십자군 전쟁(1095~1099)은 성지 예루살렘을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되찾기 위해 교황 우르바노 2세의 호소로 시작된 종교 전쟁입니다. 서유럽의 기사단과 민중이 동방으로 진군하여 니케아, 안티오크를 거쳐 1099년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예루살렘 왕국 등 십자군 국가들을 세웠습니다.

위치레반트, 아나톨리아, 중동
교전국십자군 연합, 프랑스 왕국, 신성 로마 제국, 비잔티움 제국, 풀리아·칼라브리아 공국, 셀주크 제국, 파티마 왕조
주변국시칠리아 백국, 헝가리 왕국
신생 국가에데사 백국, 예루살렘 왕국, 안티오크 공국

배경 및 맥락

11세기

세 종교의 성지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에게 핵심적인 성지였습니다. 11세기 후반 이슬람교를 믿는 셀주크 투르크가 레반트 일대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서유럽 기독교인들의 성지 순례길이 억압당하고 위태로워졌다는 소문이 돌며 서유럽 사회에 큰 긴장감이 맴돌았습니다.

1095년

비잔티움 황제의 구원 요청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비잔티움 제국군이 셀주크 군대에게 참패한 후, 아나톨리아(오늘날의 튀르키예 영토) 대부분이 이슬람 세력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위협을 느낀 비잔티움 황제 알렉시오스 1세는 로마 교황에게 군사적 도움(용병 구원)을 공식적으로 청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11세기 후반

아바스 칼리파국과 셀주크 제국

11세기 중반, 튀르크계인 셀주크 제국이 바그다드를 점령했습니다. 전통적인 이슬람의 최고 지도자인 아바스 칼리파는 종교적 상징으로만 남게 되었고, 정치와 군사의 실권은 셀주크의 '술탄'이 행사하는 이원적 지배 구조가 확립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셀주크 제국은 중동 전역으로 맹렬히 팽창했습니다. 하지만 1092년 위대한 술탄 말리크샤 1세가 사망한 이후 제국은 내전으로 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이슬람 세계의 내부 분열은 훗날 십자군이 레반트 지역에서 예상 밖의 큰 성공을 거두는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습니다.

전개 과정

11세기 후반,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은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는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새롭게 떠오른 튀르크계 이슬람 국가인 셀주크 제국이 동로마의 핵심 영토였던 아나톨리아 반도(오늘날의 튀르키예)를 대부분 빼앗고 수도 앞까지 쳐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다급해진 동로마 황제 알렉시오스 1세는 서유럽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이슬람 세력에게 위협받는 기독교인들을 돕고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자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연설을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1차 십자군은 한 나라의 정규군이 아니라 프랑스, 신성 로마 제국, 이탈리아 등 각지에서 모여든 기사들과 귀족, 평민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연합군이었습니다. 이들은 미지의 동방을 향해 멀고 험난한 모험을 떠났습니다.

십자군의 행군은 치열한 전투와 예상치 못한 사건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들은 먼저 동로마 제국을 도와 니케아라는 도시를 되찾은 뒤, 덥고 척박한 시리아 지역으로 진군했습니다. 가는 도중 십자군의 지도자 중 한 명인 보두앵은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에데사라는 도시를 돕게 되었습니다. 그는 1098년 그곳의 지배자가 되어 에데사 백국을 세웠는데, 이것이 십자군이 세운 첫 번째 나라였습니다. 한편 십자군 본대는 거대한 요새 도시인 안티오크에서 무려 8개월 동안이나 굶주림과 전염병에 시달리며 힘든 포위전을 치렀습니다. 기적적으로 안티오크를 함락시킨 후, 또 다른 지도자인 보에몽이 이곳에 남아 다스리기로 하면서 두 번째 십자군 국가인 안티오크 공국이 탄생했습니다.

1099년 여름, 숱한 고생 끝에 살아남은 십자군은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예루살렘 성벽 앞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국가 파티마 왕조가 굳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십자군은 거대한 나무 공성탑을 만들어 한 달간의 치열한 공격 끝에 성벽을 뛰어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점령 직후 성 안에서는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을 겨냥한 끔찍한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이는 오랜 행군과 굶주림으로 쌓인 병사들의 분노가 폭발한 데다, 자신들의 성지를 이교도로부터 '정화'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종교적 믿음이 겹쳐 일어난 비극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손에 넣은 십자군은 이 땅을 다스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나라인 예루살렘 왕국을 세웠습니다. 첫 번째 지배자로 추대된 고드프루아 드 부용은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신 곳에서 황금 왕관을 쓸 수 없다며 왕의 칭호를 거부하고 '성묘 수호자'를 자처했습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원정을 성공시킨 1차 십자군 전쟁은 중동 지역의 지도를 완전히 바꿔놓으며 막을 내렸습니다.

주요 사건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와 성전 선언

교황 우르바노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이슬람에 위협받는 동방 기독교인들을 구원하고 예루살렘을 되찾자는 대호소를 선언했습니다. 이에 영주들과 군중들이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Deus vult)고 환호하며 십자군 운동이 촉발되었습니다.

1097년

니케아 포위전

십자군 연합군과 비잔티움 제국군이 셀주크 룸 술탄국의 수도인 니케아를 포위 공격했습니다. 십자군이 성벽을 맹렬히 타격하는 와중에 도시가 비잔티움군에게 항복함으로써, 1차 원정군이 거둔 첫 번째 중요 성과가 되었으며 도시 영토는 비잔티움 제국에 무사히 반환되었습니다.

1097년 – 1098년

안티오크 공방전

십자군이 시리아 북부의 거대 요새 도시인 안티오크를 오랜 기간 포위했습니다. 군대 내부에 기근과 전염병이 창궐하여 끔찍한 고초를 겪었으나, 안티오크 성문을 열어준 정보원의 도움으로 성을 함락하여 보에몽이 지배하는 안티오크 공국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1099년

예루살렘 공방전

1차 십자군 본대가 성지 예루살렘을 포위한 끝에 성벽을 돌파하고 진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성 안의 무고한 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한 뒤 성지 예루살렘 왕국을 세웠고, 고드프루아 드 부용이 왕이 되는 대신 성묘의 수호자로 취임했습니다.

역사 퀴즈

1 / 5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라고 외치며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한 1차 십자군 운동을 일으킨 교황은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