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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23년 – 기원전 281년

디아도코이 전쟁

알렉산더 대왕 사후, 그의 광대한 제국을 차지하거나 재통합하려는 장군들(디아도코이) 사이에서 벌어진 장기적 분쟁입니다.

위치알렉산더 대왕 제국 전역
교전국마케도니아 제국, 디아도코이(알렉산더의 후계자들), 경쟁하는 헬레니즘 세력

배경 및 맥락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의 갑작스러운 죽음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는 바빌론에서 말라리아나 장티푸스 혹은 독살로 추정되는 갑작스러운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명확한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은 채 사망하여, 그리스에서 인도까지 이르는 제국이 지도자를 잃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323년

권력 공백

장군들과 섭정, 왕실 인물들이 후계권과 유아 왕의 보호권, 주요 속주 통치권을 두고 충돌했습니다.

전개 과정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론에서 갑작스러운 병으로 사망하자, 알렉산더 휘하의 장군들은 필리포스 3세 아르리다이오스유아 왕 알렉산더 4세를 공동 왕으로 옹립하여 제국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실권은 섭정인 페르디카스가 장악했는데, 알렉산더가 죽기 전 병상에서 직접 인장을 맡긴 인물로 천인대장으로서 국정을 운영하며 중앙 권력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2년만에 제1차 디아도코이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페르디카스가 알렉산더의 누이와 결혼하여 권력을 독점하려 하자, 안티파트로스, 크라테로스, 프톨레마이오스가 연합하여 대항했습니다. 특히 프톨레마이오스가 마케도니아로 향하던 알렉산더의 시신 운구 행렬을 강탈해 이집트로 가져가면서 전쟁이 촉발되었습니다. 당시 시신을 소유하는 자가 정통성을 가진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를 이용해 자신의 지배권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페르디카스는 이에 보복하기 위해 이집트를 침공했으나 나일강 도하 작전에 실패하며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결국 그는 피톤, 안티게네스, 셀레우코스 등 부하 장교들에게 암살당했고, 이는 제국의 더 큰 분열을 초래했습니다.

페르디카스 사후 트리파라데이소스 회의에서 안티고노스 1세는 아시아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에우메네스를 비롯한 페르디카스의 잔존 세력을 토벌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에우메네스를 격파한 후, 안티고노스는 아시아의 광대한 영토와 왕실 보물을 장악하며 가장 강력한 인물로 급부상했습니다. 제국 전체를 지배하려는 그의 야망과 급격한 세력 확장은 다른 디아도코이들(리시마코스, 셀레우코스, 카산드로스, 프톨레마이오스)을 위협했고, 이들은 결국 안티고노스를 저지하기 위해 연합 전선을 형성했습니다.

이러한 권력 투쟁 속에서 아르게아드 왕실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기원전 317년, 필리포스 3세 아르리다이오스는 손자의 권리를 지키려던 알렉산더 대왕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에게 붙잡혀 처형당했습니다. 그러나 유아 왕 알렉산더 4세와 그의 어머니 록사네 또한 이후 카산드로스에게 감금되었습니다. 기원전 310년경, 카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 통치권을 확보하고 마지막 정통 후계자를 없애기 위해 이들을 독살하거나 교살하여 암살했습니다. 이 암살을 통해 카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 왕을 선언했습니다.

안티고노스의 제국 통일 야망은 결국 '안티고노스 대 나머지 장군들'이라는 거대한 대결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카산드로스, 리시마코스, 셀레우코스, 프톨레마이오스는 연합 전선을 구축하여 그에 맞섰고, 기원전 301년 이프수스 전투 에서 격돌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안티고노스가 전사하면서 제국 통일의 꿈은 무너졌습니다. 승리한 연합 세력은 영토를 나눠 가졌는데, 셀레우코스는 아시아 대부분(셀레우코스 영역)을, 리시마코스는 소아시아 서부(리시마코스 영역)를,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집트 지배권(프톨레마이오스 영역)을 굳혔습니다.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승자들 사이의 갈등이 다시 불거졌습니다. 기원전 281년 코루페디온 전투 에서 셀레우코스가 리시마코스를 격파하며 마지막 패권 경쟁이 끝나는 듯했으나, 셀레우코스는 리시마코스를 꺾고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려는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자신에게 의탁하고 있던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에게 배신당해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케라우노스는 셀레우코스의 도움을 받아 지내고 있었지만,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고 싶은 욕심에 자신의 은인을 죽인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알렉산더의 제국을 다시 하나로 합치려던 노력은 영원히 끝이 났습니다. 거대했던 제국은 결국 마케도니아(그리스), 아시아(셀레우코스), 이집트(프톨레마이오스)라는 세 개의 큰 나라로 쪼개져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주요 사건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사망

알렉산더 대왕이 명확한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사망했습니다. 주인이 없어진 거대한 제국을 차지하기 위해 장군들이 서로 다투기 시작하면서 디아도코이 전쟁의 막이 올랐습니다.

기원전 320년

나일강 도하 참사

이 전투는 페르디카스가 알렉산더 대왕의 시신을 훔쳐간 프톨레마이오스를 응징하기 위해 이집트로 진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알렉산더의 시신을 가진 자가 정통성을 쥔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를 이용해 섭정의 권위에 도전했습니다. 페르디카스는 멤피스(Memphis) 인근 나일강에서 도하를 시도했으나, 갑자기 불어난 강물과 굶주린 악어 떼의 공격으로 2,000명이 넘는 병사가 희생되는 대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이 비극으로 군대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결국 그날 밤 셀레우코스를 비롯한 부하 장군들이 반란을 일으켜 페르디카스를 암살했습니다. 이로써 제국을 하나로 묶으려던 섭정의 노력은 완전히 막을 내렸습니다.

결과프톨레마이오스의 전략적 승리
지휘관:
⚔️ 공격측: 페르디카스 (마케도니아인) 🛡️ 방어측: 프톨레마이오스 1세 (마케도니아인)
기원전 321년

트리파라데이소스 분할

페르디카스 사후 트리파라데이소스에서 열린 회의로, 권력 구조가 대대적으로 재편되었습니다. 노장 안티파트로스가 제국의 새로운 섭정이 되었고,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집트, 셀레우코스는 바빌론을 배분받았습니다. 특히 안티고노스는 아시아의 총사령관이 되어 에우메네스 토벌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분할은 중앙 권력의 해체와 각 장군들의 독자적인 세력화가 가속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휴전 / 공백기 (5년)
기원전 316년

가비에네 전투

안티고노스와 에우메네스의 결전에서, 에우메네스의 정예 부대인 '은방패 부대(Argyraspides)'가 전장을 압도했습니다. 당시 메마른 소금 평원에서 전투가 벌어져 거대한 흙먼지 구름이 일어났는데, 안티고노스는 이 먼지가 시야를 가린 틈을 타 몰래 기병대를 우회시켜 가족과 재물이 있는 짐마차 부대를 포획했습니다. 이를 되찾으려는 은방패 부대는 에우메네스를 배신하여 안티고노스에게 넘겼고, 결국 에우메네스는 처형되었습니다. 이 승리로 안티고노스는 아시아의 확고한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결과안티고노스 승리
지휘관:
⚔️ 공격측: 안티고노스 1세 (마케도니아인) 🛡️ 방어측: 에우메네스 (그리스인)
병력:
⚔️ 공격측: 보병 22,000명, 기병 9,000기, 코끼리 65마리 🛡️ 방어측: 보병 36,000명(은방패 부대 포함), 기병 6,000기, 코끼리 114마리
휴전 / 공백기 (15년)
기원전 301년

이프수스 전투

제4차 디아도코이 전쟁의 결정적인 전투로, 알렉산더 제국을 단독으로 재통일하려는 안티고노스 1세의 야망을 저지하기 위해 카산드로스, 리시마코스, 셀레우코스가 거대 연합을 결성하여 맞섰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도 연합의 일원이었으나, 안티고노스가 이미 승리했다는 거짓 정보를 듣고 회군하여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전투의 승패는 셀레우코스가 투입한 500마리의 전투 코끼리가 갈랐는데, 이 코끼리 장벽이 안티고노스의 아들 데메트리오스가 이끄는 기병대의 복귀를 차단했습니다. 결국 안티고노스는 81세의 나이로 전사했고, 그와 함께 제국 통일의 마지막 희망도 사라졌습니다. 승자들은 영토를 다음과 같이 분할했습니다: 셀레우코스는 시리아와 아시아의 방대한 영토를, 리시마코스는 소아시아를, 카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를 차지했으며,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집트 지배권을 확고히 했습니다.

결과연합군 승리
지휘관:
⚔️ 공격측: 안티고노스 1세와 데메트리오스 🛡️ 방어측: 셀레우코스 1세 (마케도니아인), 리시마코스 (마케도니아인)
휴전 / 공백기 (20년)
기원전 281년

코루페디온 전투

코루페디온 전투는 디아도코이 전쟁의 마지막 장으로, 알렉산더의 동시대 인물 중 최후까지 생존한 두 거물, 셀레우코스 1세와 리시마코스의 대결이었습니다. 셀레우코스는 리시마코스의 영토인 소아시아를 침공했고, 이 전투에서 리시마코스가 전사했습니다. 이 승리로 셀레우코스는 이집트를 제외한 알렉산더 제국의 거의 전역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승리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마케도니아 왕관을 차지하기 직전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에게 암살당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디아도코이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습니다. 제국의 잿더미 속에서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국, 아시아의 셀레우코스 제국,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국이라는 세 개의 거대 세력이 탄생했습니다.

결과셀레우코스 승리

역사 퀴즈

1 / 1

디아도코이 전쟁은(는) 언제 시작되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