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북방 총사령관 (병부상서 겸 계료총독)
원숭환은 1584년 광둥성 동관에서 태어났습니다. 35세에 과거 진사 시험에 급제한 엘리트 문관이었으나, 요동에서 후금의 누르하치에게 명나라 군대가 연달아 패배하자 홀로 말을 타고 국경 요새들을 직접 정찰하는 대담함을 보였습니다. 조정으로 돌아온 그는 "군사와 말만 주신다면 요동을 홀로 지켜내겠습니다"라고 당당히 자원하여, 훗날 수도 베이징과 북동쪽 국경 전선을 총지휘하는 최고 군사령관(계료총독)에 올라 요동 방어의 전권을 맡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만주족의 기병을 두려워하여 산해관 안으로 후퇴할 것을 주장할 때, 원숭환은 산해관 밖의 영원성(오늘날의 랴오닝성 싱청)을 결사항전의 요새로 개축했습니다. 그는 포르투갈을 통해 도입된 서양식 최신식 대포인 홍이포를 성벽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1626년 누르하치가 13만 대군을 이끌고 성을 포위했을 때, 원숭환은 성문을 굳게 닫고 성벽에 오른 군민들과 함께 직접 활을 쏘며 결사항전했습니다. 굉음을 내뿜는 홍이포의 포탄에 후금 기병대는 무수히 쓰러졌고, 불패를 자랑하던 누르하치는 치명상을 입고 패퇴했습니다. 이듬해 영금 전투에서도 그는 홍타이지의 침공을 다시금 막아내며 명나라의 난공불락 방파제가 되었습니다.
1629년, 영원 방어선을 뚫지 못한 홍타이지가 몽골 방면으로 우회하여 만리장성을 넘어 베이징 턱밑까지 기습하자, 원숭환은 이틀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려와 황도를 결사 방어했습니다. 그러나 적의 도발과 피로에 지친 의심 많은 숭정제는 홍타이지가 꾸민 교활한 반간계(원숭환이 청군과 내통하고 있다는 가짜 밀서)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황제는 전장에서 피 흘려 싸운 원숭환을 체포하여 1630년 가장 잔혹한 형벌인 능지처참형에 처했습니다. 명나라의 가장 든든한 방패가 스스로 무너진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