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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하치

후금 건국자이자 태조 천명제

만주족 / 후금 1559년 – 1626년 (나이: 67세)

생애

열세 자루의 갑옷과 눈물의 거병

누르하치는 1559년 건주여진 훈허 강변의 유력한 추장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의 구박을 받으며 백두산 숲속에서 약초와 인삼을 캐어 명나라 시장에 내다 팔며 고단하게 자랐습니다. 1583년, 명나라 군대의 오판으로 할아버지 기오창가와 아버지 탁시가 억울하게 살해당하자, 24세의 청년 누르하치는 피눈물을 흘리며 조부가 물려준 열세 자루의 유품 갑옷만을 들고 복수와 통일을 다짐하며 거병했습니다.

여진 통일과 팔기제의 탄생

탁월한 무예와 카리스마를 지녔던 누르하치는 주변의 반대파와 적대 부족들을 차례로 제압해 나갔습니다. 1593년 해서여진 등 아홉 부족이 연합하여 3만 대군으로 쳐들어왔을 때, 고륵산에서 절묘한 지형 매복으로 적 연합군을 대파하며 만주의 최강자로 우뚝 섰습니다. 그는 전통 사냥 조직을 개혁하여 군사이자 행정 조직인 팔기제(八旗制)를 창설하고, 만주 문자를 제정하여 흩어진 유목·수렵민들을 하나의 강인한 민족 정체성으로 묶어냈습니다. 1616년, 마침내 허투알라에서 한(Khan)의 자리에 오르며 국호를 '후금(後金)'이라 선포했습니다.

사르후의 기적과 비극적인 영원성 전투

1618년, 누르하치는 명나라에 대한 일곱 가지 원한을 담은 '칠대한(七大恨)'을 선포하며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명나라가 조선군까지 끌어들여 네 갈래 길로 10만 대군을 몰고 오자, 누르하치는 "그들이 몇 갈래 길로 오든 우리는 오직 한 길로 간다"는 불후의 집중 원칙을 천명했습니다. 사르후 전투에서 기동력을 앞세워 명군 각 부대를 하나씩 각개격파하는 군사적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그러나 1626년, 만리장성의 관문인 영원성을 공격하다가 명나라 명장 원숭환이 배치한 서양식 홍이포의 집중 포격을 맞고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생애 첫 뼈아픈 패배를 겪은 누르하치는 그해 가을 향년 67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