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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성

대순 건국 황제이자 농민 반란군 영수 (틈왕)

순나라 / 명나라 1606년 – 1645년 (나이: 39세)

생애

역참의 졸병에서 반란군의 틈왕(闖王)으로

이자성은 1606년 섬서성 미지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 명나라 역참의 역졸(말을 관리하고 공문서를 나르는 병사)로 일했으나, 명나라 조정이 요동 군비(요향) 마련을 위해 전국의 역참을 대거 폐지하면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때마침 지구 한랭화(소빙하기)로 섬서성에 수년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극심한 대기근이 닥쳤고, 굶어 죽어가는 농민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독촉하자 1629년 굶주린 농민들을 이끌고 거병했습니다. 고영상의 반란군에 합류해 빼어난 기동전과 용맹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고영상이 전사하자 그의 뒤를 이어 '돌격 대장'을 뜻하는 '틈왕(闖王)'의 칭호를 물려받았습니다.

"땅을 나누고 세금을 면제한다"와 베이징 함락

이자성은 부패한 탐관오리와 왕족들의 곳간을 털어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참모들의 조언에 따라 "토지를 균등히 나누고 세금을 면제한다(균전면부)"는 파격적인 구호를 내걸자, "틈왕을 맞이하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영틈왕 불납량)"라는 노래가 천하에 울려 퍼지며 삽시간에 100만 군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1641년 황허강 유역의 요충지 낙양을 함락시키고 백성들을 수탈하던 명나라 만력제의 아들 복왕 주상순을 처단했습니다. 이어 1644년 초 서안을 점령하고 국호를 '대순(大順)'이라 칭하며 스스로 황제에 올랐습니다. 기세를 몰아 1644년 4월 수도 베이징을 전격 함락시켰고, 궁지에 몰린 명나라 숭정제는 자금성 바로 북쪽 매산(경산)에서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함으로써 276년 명나라 왕조는 막을 내렸습니다.

자금성의 혼란과 산해관의 몰락

베이징을 점령한 순나라 군대는 점차 규율을 잃고 탐욕에 눈이 멀어 관료들을 고문하며 은을 뜯어냈습니다. 특히 이자성의 부하 장수가 산해관을 지키던 명나라 총병 오삼계의 부친을 투옥하고 애첩 진원원을 빼앗는 치명적인 과오를 범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오삼계는 만리장성의 빗장을 열고 청나라 도르곤의 팔기군을 끌어들였습니다. 1644년 5월 산해관 일편석 전투에서 이자성의 군대는 맹렬한 모래바람 속에 청나라 팔기 기병대의 기습을 받아 궤멸당했습니다. 베이징을 버리고 서안으로 퇴각한 이자성은 청군의 끈질긴 추격을 받으며 남쪽으로 쫓겼고, 1645년 호북성 구궁산에서 39세의 나이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