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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곤

청나라 섭정왕이자 예친왕

만주족 / 청나라 1612년 – 1650년 (나이: 38세)

생애

누르하치의 총애와 몽골 원정의 영웅

도르곤은 1612년 누르하치와 그의 정실부인 아바하이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무예가 뛰어나고 영특하여 누르하치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습니다. 1626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권력 다툼 속에 어머니마저 순장당하는 큰 비극을 겪었지만, 이복형 홍타이지 아래에서 정백기와 양백기 군대를 통솔하는 핵심 맹장으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차하르 몽골 원정에서 원나라 황실이 대대로 전해오던 전국옥새를 손에 넣었으며, 이 옥새를 형에게 바쳐 홍타이지가 국호를 '대청'으로 고치고 황제로 즉위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도 강화도를 함락시키는 등 청나라 최고의 전공을 거두었습니다.

산해관의 결단과 베이징 입성

1643년 홍타이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황위 계승을 둘러싸고 종친 간에 치열한 갈등이 벌어졌습니다. 도르곤은 왕실의 내전을 막기 위해 홍타이지의 여섯 살 난 아들(순치제)을 황제로 옹립하고, 자신은 섭정왕이 되어 실질적인 군사와 정무의 전권을 장악했습니다. 이듬해 1644년 농민 반란군 이자성이 베이징을 함락시키자, 도르곤은 역사를 바꿀 중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산해관을 지키던 명나라 장수 오삼계의 구원 요청을 받아들여 만리장성의 빗장을 열고 입관했습니다. 산해관 일편석 전투에서 이자성 군대를 격파하고 베이징 자금성에 무혈입성한 그는, 명나라 황제의 장례를 국가적 예우로 치르고 한족 관료들을 적극 등용하는 지혜로운 유화책으로 중원의 민심을 수습했습니다.

대제국의 기틀과 사후의 명예 회복

도르곤은 양쯔강 이남으로 군대를 보내 피신한 남명 정권들을 차례로 격파하고, 변발령과 만한병용제를 실시하며 청나라 지배의 뼈대를 완성했습니다. '황부섭정왕(황제의 아버지 격인 섭정왕)'이라는 절대 권력을 누렸으나, 1650년 만리장성 밖 카라호툰에서 사냥 도중 낙마 사고의 후유증으로 38세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사후 잠시 황제로 추존되었으나 그의 독재 권력에 불만을 품었던 조정 대신들의 모함으로 묘가 파헤쳐지고 작위를 박탈당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100여 년 뒤 건륭제는 "청나라가 천하를 얻은 것은 오직 도르곤의 공로"라며 그의 모든 명예와 예친왕 직위를 공식 복권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