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관 총병이자 청나라 평서친왕
오삼계는 1612년 요동의 무관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준수한 용모와 빼어난 기마 궁술을 갖추었던 그는 젊은 시절 포위된 아버지 오양을 소수 기병으로 구출해 내며 용명을 천하에 떨쳤습니다. 20대에 이미 총병에 올랐으며, 명나라의 마지막 보루인 산해관(山海關)의 방어를 책임지는 요동군 최고의 사령관으로 부상했습니다.
1644년 봄, 이자성의 농민 반란군이 베이징을 함락시키고 숭정제가 자결하면서 명나라는 멸망했습니다. 베이징에 남겨진 오삼계의 일가족이 투옥되고 아끼던 애첩 진원원이 이자성의 부하에게 겁탈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오삼계는 격분했습니다. 앞에는 이자성의 20만 대군이 밀려오고 뒤에는 만주족 청군이 대치하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오삼계는 만주족 섭정왕 도르곤과 동맹을 맺고 천하제일관의 빗장을 열어 청군을 불러들였습니다. 산해관 앞 일편석 전투에서 오삼계와 청나라 기병대는 이자성의 순군을 괴멸시켰고, 청군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베이징에 입성했습니다.
청나라에 귀순한 오삼계는 남명 잔존 세력을 토벌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미얀마까지 도망친 영력제를 사로잡아 처형한 공로로 그는 '평서친왕'에 봉해져 운남과 귀주 일대에서 막강한 군사와 재정을 거느린 독립 왕국과 같은 권세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젊은 강희제가 황권 강화를 위해 번을 폐지(철번)하려 하자, 1673년 그는 명나라 부흥을 명분으로 '삼번의 난'을 일으켜 거대한 반청 전쟁을 주도했습니다. 한때 양쯔강 이남을 석권했으나 끝내 청군의 반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1678년 병사했으며, 그의 가문은 비참한 파멸을 맞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