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3년 백년 전쟁에서 패배한 직후, 잉글랜드는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당시 잉글랜드의 국왕이었던 랭커스터 가문의 헨리 6세는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고, 정치적으로도 무능했습니다. 프랑스 영토를 잃고 분노한 채 돌아온 수많은 군인들과 귀족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 틈을 타 요크 가문의 요크 공작 리처드가 자신에게 더 정당한 왕위 계승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국왕을 지지하는 세력은 랭커스터 가문의 상징인 '붉은 장미'를, 왕위에 도전하는 세력은 요크 가문의 상징인 '하얀 장미'를 내세우면서,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내전인 '장미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장미 전쟁은 끊임없는 배신과 예상치 못한 반전의 연속이었습니다. 1461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벌어진 타우턴 전투에서 요크 가문은 랭커스터 가문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는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전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헨리 6세는 왕위에서 쫓겨났고, 요크 공작의 아들이 에드워드 4세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에드워드 4세는 한때 자신의 가장 든든한 아군이었던 '킹메이커' 워릭 백작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잠시 왕위를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에드워드 4세는 곧바로 반격에 성공하여 적들을 물리치고 다시 왕위를 되찾아 죽을 때까지 요크 가문의 통치를 이어나갔습니다.
에드워드 4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동생인 리처드 3세는 형의 결혼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어 조카들은 정당한 왕위 계승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스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 과정에서 런던탑에 갇혀 있던 에드워드 4세의 어린 두 아들이 감쪽같이 사라졌고, 리처드 3세가 이들의 실종에 개입했다는 강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큰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요크 가문 내부마저 분열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틈타, 프랑스에 망명해 있던 랭커스터 가문의 먼 친척 헨리 튜더가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를 침공했습니다. 1485년, 전쟁의 운명을 결정지은 보스워스 전투에서 리처드 3세는 마지막 순간까지 처절하게 기병 돌격을 이끌었으나 결국 전사하고 맙니다. 잉글랜드 역사상 전투 중 사망한 마지막 국왕이었습니다. 승리한 헨리 튜더는 헨리 7세로 즉위하였고, 분열된 국가를 하나로 합치기 위해 요크 가문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했습니다. 이로써 붉은 장미와 하얀 장미가 하나로 합쳐진 '튜더 장미 문장(가문을 나타내는 상징)'이 탄생했습니다. 이후 1487년 요크 가문의 잔존 세력이 가짜 왕위 계승자를 앞세워 마지막 반란을 일으켰으나, 헨리 7세가 스토크 필드 전투에서 이들을 완전히 진압하면서 길고 참혹했던 내전은 마침내 완벽하게 마침표를 찍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