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튜더는 랭커스터 가문 쪽으로 아주 먼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로, 요크 가문 국왕들의 암살 위협을 피해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로 보냈습니다.
리처드 3세가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여 요크 가문이 분열되자, 헨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프랑스군의 지원과 랭커스터 가문 지지자들을 모아 웨일스에 상륙한 뒤 잉글랜드로 진군했습니다. 1485년 보스워스 전투에서 헨리는 리처드 3세를 물리치고 마침내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7세가 되었습니다.
오랜 내전으로 분열된 국가를 치유하고 자신의 불안정한 왕위 계승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헨리 7세는 에드워드 4세의 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했습니다. 이 결혼은 랭커스터의 붉은 장미와 요크의 하얀 장미가 합쳐진 '튜더 장미'라는 상징을 탄생시켰습니다. 헨리 7세는 매우 영리하고 경제에 밝은 국왕이었으며, 몰락한 귀족들을 대신해 강력한 왕권을 세우고 잉글랜드를 변화시킬 튜더 왕조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