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샹파뉴 출신으로 본명은 오도 드 샤티용(Odo of Châtillon)입니다. 당대 가장 영향력 있던 클뤼니 수도원의 수도사로 활동하다가 후일 교황 그리고리오 7세의 최측근이 되어 강력한 교회 개혁(그레고리오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서임권 투쟁 문제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와 극심한 갈등을 빚던 혼란스러운 시기인 1088년에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며, 즉위 초기에는 로마에 입성하지 못하고 망명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1095년 피아첸차 공의회에서, 튀르크계 셀주크 제국의 위협에 시달리던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1세로부터 병력을 지원해달라는 간절한 구원 요청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말, 그는 프랑스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서방 기독교인들에게 동방으로 진군할 것을 촉구하는 역사적인 대호소를 펼쳤습니다. 이 연설에서 그는 성지를 해방하기 위해 싸우는 자들의 모든 죄를 사해주겠다는 파격적인 면벌을 약속했습니다.
이 호소는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Deus vult)'라는 열광적인 구호와 함께 수많은 기사와 민중들을 끌어모으며 제1차 십자군 전쟁을 성공적으로 출범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1099년 7월 29일에 선종했는데, 애석하게도 십자군이 최종 목표인 예루살렘을 마침내 탈환했다는 승전보가 유럽에 도착하기 불과 몇 주 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