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왕'(le Bien-Aimé), 그리고 나중에는 '광인왕'(le Fou)으로 불렸던 샤를 6세는 백년전쟁의 가장 위태로운 시기에 프랑스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20대 중반부터 심각한 정신병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심해질 때는 자기 아내와 자식들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했고, 때로는 자기 몸이 유리로 만들어져서 만지면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고 믿는 끔찍한 망상(유리 망상증)에 시달렸습니다.
왕이 제대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자, 프랑스 귀족들 사이에서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끔찍한 내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혼란을 틈타 잉글랜드의 헨리 5세가 쳐들어왔고,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는 대패하고 맙니다.
1420년,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샤를 6세는 잉글랜드의 강요로 굴욕적인 '트루아 조약'에 서명하게 됩니다. 이 조약으로 인해 그는 친아들인 도팽 샤를(훗날의 샤를 7세)의 왕위 계승권을 빼앗고, 적국인 잉글랜드 왕 헨리 5세를 다음 프랑스 왕으로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그의 비극적인 질병은 프랑스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간 결정적 원인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