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공작이자 잉글랜드 국왕 (정복왕)
"보라,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내가 내 손으로 잉글랜드의 땅을 움켜쥐었다!"— 1066년 페븐시 해안에 상륙하며 넘어졌을 때 외친 말
윌리엄 1세(c. 1028~1087, '정복왕 윌리엄')는 노르망디의 공작이자 잉글랜드의 국왕으로, 1066년 노르만 정복을 이끌고 잉글랜드에 노르만 왕조를 개창한 군주입니다. 앵글로색슨 사회를 강력한 중앙집권적 봉건 국가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윌리엄은 1028년경 노르망디의 팔레즈에서 제6대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 1세와 무두장이의 딸 에를르바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1035년 아버지가 성지 순례 도중 세상을 떠나자 불과 여덟 살의 나이로 공작위를 물려받았습니다. 어린 시절 내내 '사생아 기욤'이라 불리며 반란 귀족들의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 시달렸으나, 1047년 발레듄 전투에서 프랑스 국왕 앙리 1세의 지원을 받아 반란군을 격파하며 공국 전체에 강력한 통제권을 확립했습니다.
1066년 1월, 자식이 없던 외종조부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참회왕이 서거했습니다. 윌리엄은 과거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왕위 계승을 약속했고, 잉글랜드의 실력자 해럴드 고드윈슨 역시 성유물 앞에서 이를 지키겠다고 맹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해럴드가 스스로 왕위에 오르자, 윌리엄은 교황의 깃발을 받아들고 대규모 함대를 건조하여 침공을 준비했습니다. 1066년 9월 영국해협을 건너 상륙한 그는 10월 14일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거짓 후퇴 전술로 잉글랜드의 견고한 방패벽을 무너뜨리고 해럴드 왕을 전사시키며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066년 성탄절에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잉글랜드 국왕으로 즉위한 윌리엄은 각지의 앵글로색슨 반란을 철저히 진압했습니다. 특히 북부 잉글랜드의 봉기를 무자비하게 초토화하여 저항 의지를 꺾었습니다. 그는 잉글랜드 귀족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자신을 따른 노르만 기사들에게 나누어 주며 충성을 맹세받는 철저한 봉건 체제를 이식했습니다. 도시들을 감시하기 위해 런던탑(화이트 타워)을 비롯한 석조 요새들을 건설했고, 1086년에는 세금을 공정하게 징수하고 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전국 토지 대장인 '둠즈데이 북'을 편찬했습니다.
1087년 윌리엄은 프랑스 국왕 필리프 1세와의 국경 분쟁 중 망트 공성전에서 말 안장에 부딪히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습니다. 루앙 근교의 수도원에서 세상을 떠난 그의 유해는 자신이 세운 캉의 생테티엔 수도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윌리엄의 정복으로 잉글랜드는 스칸디나비아 세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서유럽 대륙 문명권의 중심 무대로 편입되었으며, 지배층의 노르만 프랑스어와 민중의 고대 영어가 300년간 융합되면서 오늘날 전 세계가 사용하는 현대 영어가 탄생하는 결정적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