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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랄드 3세

노르웨이 국왕 ('최후의 바이킹 왕')

노르웨이 왕국 c. 1015 – 1066 (나이: 51세)
"전쟁터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 노르웨이 사가에 기록된 하랄드의 말

생애

하랄드 3세(c. 1015~1066, 하랄드 하드라다)는 노르웨이의 국왕(재위 1046~1066)으로, '가차 없는 통치자'라는 뜻의 '하드라다(Hardrada)'로 불렸습니다. 동로마 제국의 근위대장에서 북유럽의 패왕으로 군림하다 잉글랜드 침공 중 전사하여 역사상 **'최후의 바이킹'**으로 불립니다.

망명과 동방에서의 활약

하랄드는 1015년경 노르웨이 링에리케에서 태어났습니다. 1030년 불과 열다섯의 나이에 이복형인 성 올라프 2세를 도와 스티클레스타드 전투에 참전했다가 중상을 입고 패배했습니다. 그는 스웨덴을 거쳐 키예프 루스로 망명하여 야로슬라프 현공을 섬겼습니다. 이후 1034년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건너가 황제의 정예 북방 전사 부대인 '바랑기안 근위대'에 입대했습니다. 뛰어난 무예와 지략으로 근위대장에 오른 그는 시칠리아, 소아시아, 지중해 전역에서 아랍 및 노르만 세력과 싸워 연전연승하며 막대한 황금과 전리품을 모았습니다.

노르웨이 귀환과 철권통치

1045년 막대한 보물을 싣고 북유럽으로 돌아온 하랄드는 조카인 노르웨이 국왕 망누스 1세와 권력을 나누어 공동 통치하다가, 1047년 망누스가 사망하자 노르웨이의 단독 국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국내 귀족들의 반란을 가차 없이 진압하여 '하드라다'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덴마크의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스벤 2세와 15년 가까이 치열한 해전을 벌이며 북해의 패권을 다퉜습니다.

1066년 잉글랜드 침공과 최후

1066년 에드워드 참회왕이 서거하자, 하랄드는 과거 노르웨이 왕실과 잉글랜드 사이에 맺어졌던 옛 조약을 근거로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습니다. 해럴드 2세에게 불만을 품은 국왕의 동생 토스티그의 권유를 받은 그는 300척의 함선과 1만여 명의 바이킹 정예군을 이끌고 잉글랜드 북부를 전격 침공했습니다. 9월 20일 풀퍼드 전투에서 잉글랜드 북부 군대를 대파하고 요크의 항복을 받아냈으나, 방심한 채 갑옷을 벗고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인질을 기다리던 중 해럴드 2세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의 기습을 받았습니다. 하랄드는 광전사처럼 분전하다 목에 화살을 맞고 전사했습니다. 그의 패배로 250년간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전설적인 바이킹의 시대는 영원히 종말을 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