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섬브리아 백작
"형제여, 내가 북방의 군대를 이끌고 온 것은 조국을 짓밟기 위함이 아니라, 빼앗긴 내 명예와 영지를 되찾기 위함이다."—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 전 형 해럴드 2세와의 대화에서
토스티그 고드윈슨(c. 1026~1066)은 11세기 잉글랜드의 강력한 귀족이자 노섬브리아 백작으로, 형인 국왕 해럴드 2세와의 극심한 불화 끝에 노르웨이의 바이킹 대군을 잉글랜드로 끌어들여 1066년의 운명적인 세 군주의 왕위 쟁탈전을 촉발한 인물입니다.
토스티그는 잉글랜드 최고의 권력자였던 웨식스 백작 고드윈의 삼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누이 이디스가 에드워드 참회왕과 결혼하면서 가문의 위세는 왕실을 능가할 정도로 높아졌고, 1055년 시워드 백작이 사망하자 토스티그는 북부의 광대한 영지인 노섬브리아 백작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자치 성향과 데인족의 관습이 강했던 북부 주민들에게 남부 앵글로색슨 방식의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정적들을 가차 없이 처형하며 가혹한 철권통치를 펼쳐 큰 원성을 샀습니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맬컴 3세와 의형제를 맺었음에도 국경 지대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해 백성들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1065년 가을, 토스티그의 폭정에 항거하여 노섬브리아의 세인(귀족)들과 백성들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반란군은 요크를 점령하고 토스티그의 가신들을 처형한 뒤, 머시아 백작의 동생인 모카를 새 백작으로 추대했습니다. 국왕 에드워드는 반란을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으나, 잉글랜드의 실권을 쥐고 있던 친형 해럴드 고드윈슨은 왕국 전체의 내전을 막기 위해 반란군의 요구를 수용했습니다. 결국 토스티그는 백작위를 박탈당하고 잉글랜드에서 영구 추방되었습니다. 가장 믿었던 형에게 배신당했다고 여긴 토스티그는 깊은 원한을 품고 아내의 고향인 플랑드르로 망명했습니다.
1066년 1월 에드워드 참회왕이 후계자 없이 서거하고 형 해럴드가 국왕으로 즉위하자, 복수심에 사로잡힌 토스티그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그는 먼저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작을 접촉한 뒤, 스코틀랜드를 거쳐 '최후의 바이킹 왕'으로 불리던 노르웨이 국왕 하랄드 하드라다를 찾아가 잉글랜드 왕위를 차지하도록 설득했습니다. 1066년 9월, 토스티그는 하드라다가 이끄는 300척의 대함대와 합류하여 잉글랜드 북부를 침공했습니다. 9월 20일 풀퍼드 전투에서 잉글랜드 북부 군대를 궤멸시키고 요크의 항복을 받아내며 승리를 눈앞에 둔 듯했습니다.
그러나 9월 25일, 남부 해안에서 믿을 수 없는 속도로 300km를 강행군해 온 형 해럴드 2세의 군대가 스탬퍼드 브리지에 홀연히 나타났습니다. 결전 직전, 해럴드 2세는 전령을 보내 동생 토스티그에게 군대를 거두면 노섬브리아 백작위와 왕국의 영토 3분의 1을 돌려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토스티그가 동맹인 하드라다에게는 무엇을 줄 것인지 묻자, 해럴드는 "그의 키가 크니 잉글랜드 흙 7피트(무덤자리)를 주겠다"고 답했습니다. 토스티그는 동맹을 배신하고 살기를 거부하고 결전을 택했습니다. 이어진 처절한 백병전 속에서 토스티그는 하드라다와 함께 전사했습니다. 토스티그의 복수극은 자신의 죽음으로 끝났지만, 그와의 싸움으로 잉글랜드 정예군을 극도로 지치게 만들어 3주 뒤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잉글랜드가 노르만 정복자 윌리엄에게 패망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