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의 마지막 앵글로색슨 국왕
"하랄드에게 줄 땅은 오직 잉글랜드 흙 7피트뿐이다. 그의 키가 다른 사람보다 크니 그 정도면 묻히기에 충분할 것이다."—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 전 노르웨이 사절에게 한 말
해럴드 2세(c. 1022~1066, 해럴드 고드윈슨)는 잉글랜드의 마지막 앵글로색슨계 국왕으로, 1066년 바이킹과 노르만인의 연이은 침공에 맞서 싸우다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비운의 군주입니다.
해럴드는 1022년경 잉글랜드 최고의 권력자였던 웨식스 백작 고드윈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053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웨식스 백작위를 물려받으며 국왕 에드워드 참회왕 다음가는 잉글랜드 최대의 실력자로 떠올랐습니다. 뛰어난 군사 지휘관이었던 그는 1063년 험준한 산악 지형을 이용해 저항하던 웨일스의 군주 그리피드 압 리웰린을 굴복시키며 잉글랜드 전역에 명성을 떨쳤습니다.
1066년 1월 5일 에드워드 참회왕이 후계자 없이 서거하자, 잉글랜드 현인 회의(위탄)는 만장일치로 해럴드를 새 국왕으로 추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즉위는 즉각 거대한 시련에 직면했습니다.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은 과거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왕위를 약속했고 해럴드 본인도 충성을 맹세했다며 침공을 선언했고, 북쪽에서는 노르웨이 국왕 하랄드 하드라다가 해럴드의 배신한 동생 토스티그와 손잡고 대규모 바이킹 함대를 이끌고 쳐들어왔습니다.
9월 중순 바이킹군이 요크를 점령하자, 남부 해안에서 노르만군을 기다리던 해럴드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나흘 만에 런던에서 요크까지 300km가 넘는 거리를 주파하는 경이적인 강행군을 펼쳐 9월 25일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방심하고 있던 바이킹군을 기습했습니다. 격렬한 백병전 끝에 하드라다 국왕과 토스티그를 사살하고 바이킹군을 궤멸시키며 300년에 걸친 잉글랜드의 바이킹 침략사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승리한 지 불과 사흘 뒤, 노르망디의 윌리엄이 남부 페븐시에 상륙했다는 급보가 날아들었습니다. 해럴드는 지친 군대를 이끌고 다시 남쪽으로 400km를 달려내려가 10월 14일 헤이스팅스 인근 센락 언덕에 견고한 방패벽을 치고 배수진을 쳤습니다. 하루 종일 이어진 격전 속에서 앵글로색슨 보병들은 노르만 기병의 돌격을 꿋꿋이 막아냈으나, 노르만군의 거짓 후퇴에 속아 대열이 흐트러졌습니다. 해럴드는 눈에 화살을 맞고 쓰러진 뒤 노르만 기사들의 칼에 베여 전사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전장에서 수습되어 자신이 세운 월섬 수도원에 안장되었으며, 그의 죽음과 함께 500년간 이어진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 시대도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