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말, 찬란했던 당나라 - 당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황금시대라 불리며, 전 세계의 문화가 실크로드를 통해 모여들었던 화려한 제국이었습니다. 당나라 황제들이 도교를 만든 '노자'의 후손이라는 전설도 전해집니다. 이 시기에는 이백, 두보와 같은 시인들이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고, 서유기 속 손오공과 삼장법사의 모험도 바로 이때의 실제 승려 현장의 기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도 장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번화하고 앞선 문명을 가진 도시로, 모든 길은 장안으로 통한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번성했습니다.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정부의 가혹한 소금 전매제 - 당나라 말기, 부족한 세금을 메우기 위해 국가가 소금 판매를 독점(전매제)하면서 소금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졌습니다. 이에 반발해 황소와 같은 상인들이 몰래 소금을 팔아(밀매) 큰돈을 벌고 무력을 키웠으며, 이들이 훗날 거대한 반란의 중심 세력이 되었습니다.와 잇따른 대흉년은 백성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874년, 소금 밀매 상인이었던 왕선지와 황소 - 당나라 말기의 반란 지도자로, 과거 시험에 낙방한 뒤 소금 밀매업자로 활동하다가 거대한 반란을 일으켜 당나라를 멸망의 길로 몰아넣은 인물입니다.가 마침내 반란의 깃발을 올렸습니다. 굶주림에 지친 농민들과 무장한 밀매업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이들은 거대한 파도처럼 중국의 남부와 중부를 휩쓸었습니다.
880년, 반란군은 마침내 당나라의 부도인 낙양을 점령하고 이어 수도 장안까지 함락시켰습니다. 당 희종은 조상인 현종이 그러했듯 험준한 사천 땅으로 비참하게 피난을 떠나야 했습니다. 장안을 차지한 황소는 스스로 새로운 나라인 '대제국(대기국)'의 황제 자리에 올랐지만, 그의 통치는 매우 잔인했으며 백성들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습니다.
당나라 조정은 사타족 - 당나라 말기 최고의 군사적 동맹이었던 튀르크계 유목 민족입니다.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하여 오르도스 지역에 정착한 이들은 당나라의 강력한 기병 부대로 활약했으며, 특히 황소의 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후 5대 10국 시대에 여러 나라를 세우며 중국 역사의 중심에 등장하게 됩니다.의 용맹한 장군 이계용 - 사타족 출신의 용맹한 장군으로, 온통 검은색 옷을 입은 '까마귀 군대(흑의군)'를 이끌고 황소의 난을 진압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당나라 말기의 실력자입니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이계용의 '까마귀 군대'는 반란군을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반란군 측에서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황소의 가장 신임을 받던 부하 중 한 명으로, 여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던 주전충 - 원래 황소의 부하였으나 당나라에 항복한 뒤 큰 공을 세웠으며, 결국 당나라의 마지막 황제를 몰아내고 5대 10국 시대의 첫 나라인 후량을 세운 인물입니다.이 전세가 불리해지자 당나라에 항복한 것입니다. 882년, 주전충은 동주(통저우)를 지키던 중 황소가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 보낸 감시관을 죽이고 당나라에 투항했습니다. 당 희종은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완전히 충성스럽다'는 뜻의 '전충'이라는 이름을 하사했습니다. 가장 믿었던 장수의 배신과 이계용의 강력한 공격으로 황소의 세력은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결국 884년, 황소는 도망치던 중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반란이 끝났어도 당나라는 예전의 힘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나라의 실권은 이미 각 지방의 군사 지도자인 '절도사 - 당나라 후기에 국경 지역의 방어를 위해 설치된 고위 군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해당 지역의 군사력은 물론 행정권과 조세권까지 장악한 막강한 권력자들을 말합니다. 안록산과 같은 변방 절도사들이 가진 지나치게 큰 힘은 결국 안사의 난을 초래했고, 당나라가 지방 할거 세력에 의해 분열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들이 쥐고 있었고, 그중 가장 힘이 센 인물은 이제 당나라의 장군이 된 주전충이었습니다. 주전충은 경쟁자들을 차례로 제거하고 환관 - 환관은 황실의 궁궐에서 일하던 남성 관리들로, 원래는 황제와 그 가족의 시중을 드는 하인이었습니다. 이들은 황제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며 황제의 깊은 신뢰를 얻었기 때문에, 때로는 나라의 정치를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갖기도 했습니다. 후한 말기에는 환관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반대파를 몰아내는 등 부패가 심해져 나라가 무너지는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들을 몰살하며 장안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907년, 주전충은 당나라의 마지막 황제를 몰아내고 스스로 '후량'을 세웠습니다. 이로써 300년의 역사를 가진 당나라는 완전히 멸망했고, 중국은 여러 나라가 세워져 끊임없이 싸우는 5대 10국 - 당나라가 멸망한 907년부터 송나라가 세워진 960년까지 중국이 여러 나라로 갈라져 싸우던 혼란기입니다. 북쪽 중원 지역에서는 5개의 왕조(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가 빠르게 교체되었고, 남쪽과 서쪽 지방에서는 10개 이상의 왕국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며 발전했습니다. 이 시기는 무력에 의한 정권 찬탈이 빈번했으나, 한편으로는 강남 지방의 경제와 문화가 크게 발달하고 훗날 송나라의 문치주의 기틀이 마련된 시기이기도 합니다.의 혼란한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