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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6년 – 기원전 202년

초한전쟁

진나라 - 진나라는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진시황이 세운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제국입니다. 비록 15년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유지되었지만, 중국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진시황은 전국마다 달랐던 글자와 돈, 길이나 무게를 재는 단위를 하나로 통일했고, 북쪽 유목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죽은 뒤 묻힌 거대한 무덤은 흙으로 빚은 수많은 병사 인형인 '병마용'이 지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멸망 후, 천하의 패권을 두고 초나라 - 춘추전국시대 양쯔강 유역을 호령했던 거대한 강국입니다. 진나라에 의해 멸망했으나, 훗날 초한전쟁 시기에 반란군들이 결집하는 핵심적인 정신적, 정치적 구심점이 되었습니다.의 패왕 항우 - 진나라를 멸망시킨 전설적인 무장이었으나, 초한전쟁에서 유방에게 패배하여 천하를 내준 영웅입니다.한나라 - 한나라는 초나라 항우를 물리친 유방(고조)이 세운 중국의 두 번째 통일 제국입니다. 400년 넘게 이어지며 중국 역사상 가장 눈부신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이 시기에 종이가 발명되었고, 서양과 물건을 주고받는 무역로인 '실크로드(비단길)'가 열렸으며, 유교가 나라의 기본 가르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나라의 영향력이 워낙 커서, 오늘날 중국의 가장 큰 민족은 스스로를 '한족'이라고 부르고, 중국의 글자도 '한자(漢字)'라고 부른답니다.유방 - 평민 출신으로 한나라를 세운 창립자이며, 뛰어난 정치력과 리더십으로 강력한 항우를 물리친 인물입니다.이 벌인 거대한 전쟁입니다. 유방의 승리와 한나라의 건국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위치중국
교전국한나라 - 한나라는 초나라 항우를 물리친 유방(고조)이 세운 중국의 두 번째 통일 제국입니다. 400년 넘게 이어지며 중국 역사상 가장 눈부신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이 시기에 종이가 발명되었고, 서양과 물건을 주고받는 무역로인 '실크로드(비단길)'가 열렸으며, 유교가 나라의 기본 가르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나라의 영향력이 워낙 커서, 오늘날 중국의 가장 큰 민족은 스스로를 '한족'이라고 부르고, 중국의 글자도 '한자(漢字)'라고 부른답니다., 서초 - 진나라 멸망 후, 천하의 패자가 된 항우가 선포한 제국입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옛 초나라와는 구분됩니다. (초나라 - 춘추전국시대 양쯔강 유역을 호령했던 거대한 강국입니다. 진나라에 의해 멸망했으나, 훗날 초한전쟁 시기에 반란군들이 결집하는 핵심적인 정신적, 정치적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진나라 - 진나라는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진시황이 세운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제국입니다. 비록 15년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유지되었지만, 중국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진시황은 전국마다 달랐던 글자와 돈, 길이나 무게를 재는 단위를 하나로 통일했고, 북쪽 유목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죽은 뒤 묻힌 거대한 무덤은 흙으로 빚은 수많은 병사 인형인 '병마용'이 지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배경 및 맥락

기원전 210년경

진시황을 바라보던 두 남자

진나라 - 진나라는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진시황이 세운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제국입니다. 비록 15년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유지되었지만, 중국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진시황은 전국마다 달랐던 글자와 돈, 길이나 무게를 재는 단위를 하나로 통일했고, 북쪽 유목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죽은 뒤 묻힌 거대한 무덤은 흙으로 빚은 수많은 병사 인형인 '병마용'이 지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전성기 시절, 항우 - 진나라를 멸망시킨 전설적인 무장이었으나, 초한전쟁에서 유방에게 패배하여 천하를 내준 영웅입니다.유방 - 평민 출신으로 한나라를 세운 창립자이며, 뛰어난 정치력과 리더십으로 강력한 항우를 물리친 인물입니다.은 우연히 각각 진시황의 화려한 행차를 목격하게 됩니다. 멸망한 초나라 - 춘추전국시대 양쯔강 유역을 호령했던 거대한 강국입니다. 진나라에 의해 멸망했으나, 훗날 초한전쟁 시기에 반란군들이 결집하는 핵심적인 정신적, 정치적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귀족 출신으로 기골이 장대했던 항우는 '저 자리를 내가 대신 차지해주마!'라고 패기 있게 외쳤습니다. 반면, 죄수들을 호송하던 말단 관리 유방은 '아, 사내대장부라면 모름지기 저렇게 살아야지'라고 부러워하며 탄식했습니다. 이 유명한 일화는 두 사람의 극명하게 다른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기원전 209년

진나라에 대항한 농민 반란

진시황이 죽은 후, 진나라의 가혹한 통치에 반발하여 전국적인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진승과 오광의 난을 시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전개 과정

'초나라 - 춘추전국시대 양쯔강 유역을 호령했던 거대한 강국입니다. 진나라에 의해 멸망했으나, 훗날 초한전쟁 시기에 반란군들이 결집하는 핵심적인 정신적, 정치적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회왕'은 멸망한 초나라 왕실의 핏줄이었지만 가난하게 양을 치며 살던 평범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다 반란군을 이끌던 항우 - 진나라를 멸망시킨 전설적인 무장이었으나, 초한전쟁에서 유방에게 패배하여 천하를 내준 영웅입니다.의 삼촌(항량)이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 그를 찾아내어 껍데기뿐인 가짜 왕으로 앉혔습니다. 하지만 항우의 삼촌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위기를 느낀 반란군 지휘관들이 모여들자, 늘 조종만 받던 회왕은 흩어진 군대를 직접 통솔하며 실질적인 최고 사령관으로 나섰습니다. 회왕이 진나라 - 진나라는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진시황이 세운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제국입니다. 비록 15년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유지되었지만, 중국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진시황은 전국마다 달랐던 글자와 돈, 길이나 무게를 재는 단위를 하나로 통일했고, 북쪽 유목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죽은 뒤 묻힌 거대한 무덤은 흙으로 빚은 수많은 병사 인형인 '병마용'이 지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심장부(수도 함양)를 공격하기 위한 작전 회의를 열었을 때, 가장 큰 골칫거리는 너무 잔인하고 제멋대로인 '항우'였습니다. 항우를 견제하고 싶었던 회왕은 일부러 그를 험난한 북쪽 참전부대의 부사령관으로 임명해 진나라 주력군과 싸우게 했습니다. 대신 성격이 너그럽고 백성들을 잘 감싸주는 '유방 - 평민 출신으로 한나라를 세운 창립자이며, 뛰어난 정치력과 리더십으로 강력한 항우를 물리친 인물입니다.'을 수도로 곧장 향하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의 지휘관으로 파견했습니다.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롭게 항복을 받아내어 유방을 키워주려는 철저한 계산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온 세상에 엄청난 약속을 내걸었습니다. '누구든 진나라 심장부(관중)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을 그곳의 왕으로 인정하겠다!'

이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북쪽으로 향한 항우는 '거록 전투'에서 진나라 주력군을 박살내며 자신의 압도적인 군사적 천재성을 증명했습니다. 다른 반란군 장군들이 두려움에 무릎을 기어서 그를 만나러 올 정도로, 항우는 반란군의 절대적인 무력의 상징이자 최고 수장이 되었습니다. 한편, 무예는 보잘것없지만 특유의 친화력과 남의 말을 잘 듣는 포용력으로 천재 참모들을 끌어모은 유방은 수월하게 서쪽으로 진격했습니다. 유방은 약속대로 가장 먼저 수도 함양을 점령하고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했습니다. 하지만 북쪽 전투를 끝내고 뒤늦게 어마어마한 군대를 이끌고 도착한 항우가 분노하여 무력으로 유방을 내쫓아버렸고, 이 사건을 계기로 두 영웅의 목숨을 건 짜릿한 대결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원전 206년, 마침내 진나라가 멸망했습니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항우는 천하를 18개 국가로 나누고 스스로를 '서초 - 진나라 멸망 후, 천하의 패자가 된 항우가 선포한 제국입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옛 초나라와는 구분됩니다.패왕'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견제하는 의미로 유방에게는 멀고 험난한 한중 지역을 주며 한왕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유방은 몰래 힘을 기르고 천재 장군 한신 - 유방에게 천하를 안겨준 천재적인 대장군이지만, 권력이 너무 커져 결국 처형당한 비운의 영웅입니다.을 등용하여, 결국 한중을 벗어나 항우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전쟁 내내 항우는 전술적으로 빛났고, 유방은 전략적으로 끈질겼습니다. 기원전 205년 팽성 전투에서 항우는 유방이 이끄는 거대한 연합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대승을 거두는 등 여러 전투에서 이겼습니다. 하지만 유방은 뛰어난 정치력으로 살아남아 동맹을 맺고 항우의 보급로를 끊어버렸습니다.

유방이 항우의 주력 부대를 묶어두는 동안, 대장군 한신은 북쪽 지역을 차례차례 정복하며 항우를 완전히 고립시켰습니다. 기원전 202년, 유방과 한신의 연합군은 해하 전투에서 항우를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한나라 - 한나라는 초나라 항우를 물리친 유방(고조)이 세운 중국의 두 번째 통일 제국입니다. 400년 넘게 이어지며 중국 역사상 가장 눈부신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이 시기에 종이가 발명되었고, 서양과 물건을 주고받는 무역로인 '실크로드(비단길)'가 열렸으며, 유교가 나라의 기본 가르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나라의 영향력이 워낙 커서, 오늘날 중국의 가장 큰 민족은 스스로를 '한족'이라고 부르고, 중국의 글자도 '한자(漢字)'라고 부른답니다. 군대가 사방에서 고향 초나라의 노래를 부르자(이것이 '사면초가 - 해하 전투에서 한나라 군대가 사방에서 초나라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하여, 초나라 병사들이 고향이 함락된 줄 알고 사기를 완전히 잃게 만든 심리전 전술입니다. 오늘날에는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극단적으로 고립된 위기 상태'를 뜻하는 사자성어로 쓰이고 있습니다.'의 유래입니다), 항우의 군대는 전의를 상실하고 무너졌습니다. 항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유방은 천하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어 한나라를 세웠습니다.

주요 사건

기원전 207년

거록 전투 (파부침주)

진나라 - 진나라는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진시황이 세운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제국입니다. 비록 15년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유지되었지만, 중국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진시황은 전국마다 달랐던 글자와 돈, 길이나 무게를 재는 단위를 하나로 통일했고, 북쪽 유목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죽은 뒤 묻힌 거대한 무덤은 흙으로 빚은 수많은 병사 인형인 '병마용'이 지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주력군이 조나라 - 중국 춘추전국시대 세력을 떨친 칠웅(七雄) 중 하나입니다. 진나라에 의해 한 차례 멸망했으나 진시황 사후 옛 귀족들이 나라를 재건하면서 부활했습니다. 이후 초한전쟁 시기 '거록 전투'와 '정형 전투(배수진)' 등 역사를 바꾼 굵직한 사건들의 핵심 무대이자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습니다.를 포위하자, 항우 - 진나라를 멸망시킨 전설적인 무장이었으나, 초한전쟁에서 유방에게 패배하여 천하를 내준 영웅입니다.초나라 - 춘추전국시대 양쯔강 유역을 호령했던 거대한 강국입니다. 진나라에 의해 멸망했으나, 훗날 초한전쟁 시기에 반란군들이 결집하는 핵심적인 정신적, 정치적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구원군을 이끌고 진격한 전투입니다. 강을 건넌 항우는 타고 온 배를 가라앉히고 밥 지을 솥마저 깨뜨리는 극단적인 전술('파부침주 - 항우가 거록 전투에서 타고 온 배를 가라앉히고 밥 지을 솥을 깨뜨린 일화에서 유래한 사자성어로, 퇴로를 완전히 끊고 죽기 살기로 결전의 의지를 다지는 것을 뜻합니다.')로 병사들에게 물러설 곳이 없음을 각인시켰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맹렬히 돌격한 항우의 부대는 거대한 진나라 주력군을 처참하게 궤멸시켰습니다. 이 눈부신 전술적 대승으로 항우는 다른 장군들을 무릎 꿇게 만들며 모든 반란군의 왕이자 절대적인 무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기원전 206년

홍문연 (홍문의 연회)

유방 - 평민 출신으로 한나라를 세운 창립자이며, 뛰어난 정치력과 리더십으로 강력한 항우를 물리친 인물입니다.이 자신보다 먼저 진나라 수도 함양(관중)을 점령하자 분노한 항우가 유방을 전멸시키려 한 사건입니다. 전력 차이를 깨달은 유방은 항우의 진영인 홍문으로 직접 찾아가 납작 엎드리며 사과했습니다. 팽팽한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 속에 열린 연회에서 항우의 책사 범증이 검무를 빙자해 유방의 목을 치려 했으나, 유방의 전속 호위무사 번쾌가 목숨을 걸고 연회장에 살기등등하게 뛰어들어 방어한 덕분에 유방은 화장실을 핑계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훗날을 도모하게 된 결정적인 정치적 사건입니다.

기원전 206년

18제후국 분봉과 서초 - 진나라 멸망 후, 천하의 패자가 된 항우가 선포한 제국입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옛 초나라와는 구분됩니다.패왕

진나라 수도 함양을 불태운 뒤, 천하의 주인이 된 항우는 자기 마음대로 제국을 18개 제후국으로 쪼개어 장군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왕 중의 왕이라는 뜻인 '서초 - 진나라 멸망 후, 천하의 패자가 된 항우가 선포한 제국입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옛 초나라와는 구분됩니다.패왕'으로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토 분배는 자신을 따른 측근들만 알짜 땅을 챙겨주고, 유방처럼 가장 큰 공을 세운 경쟁자는 의도적으로 멀고 험난한 오지(한중)로 쫓아내는 등 철저히 불공평했습니다. 이 노골적인 차별 대우는 찬밥 신세가 된 제후들의 엄청난 반발을 사며 새로운 전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205년

팽성 전투

항우가 제나라 반란을 진압하러 멀리 떠난 틈을 타, 유방이 무려 56만 명의 대연합군을 영끌하여 초나라의 빈 수도 팽성을 호기롭게 점령했습니다. 반역의 소식을 들은 항우는 분노하며 단 3만 명의 정예 기병만을 이끌고 번개처럼 되돌아왔습니다. 새벽녘에 예상치 못한 서쪽에서 몰아친 기병의 파괴적인 기동 전술에, 승리와 약탈에 취해 있던 연합군은 대혼란에 빠져 강물로 쫓겨 들어갔고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항우의 압도적인 군사적 천재성이 돋보인 전투로, 유방은 아버지와 아내마저 적에게 빼앗기고 수치스럽게 도망쳤습니다.

기원전 204년

정형 전투 (배수진)

항우를 사방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한신 - 유방에게 천하를 안겨준 천재적인 대장군이지만, 권력이 너무 커져 결국 처형당한 비운의 영웅입니다.의 북벌 과정에서 벌어진 전설적인 전투입니다. 불과 3만의 오합지졸 병사를 이끈 대장군 한신은 20만 조나라 철벽 대군을 맞이하여, 의도적으로 강을 등지고 진을 치는 자살 행위와도 같은 '배수진' 전술을 펼쳤습니다. 퇴로가 완전히 끊긴 한나라 - 한나라는 초나라 항우를 물리친 유방(고조)이 세운 중국의 두 번째 통일 제국입니다. 400년 넘게 이어지며 중국 역사상 가장 눈부신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이 시기에 종이가 발명되었고, 서양과 물건을 주고받는 무역로인 '실크로드(비단길)'가 열렸으며, 유교가 나라의 기본 가르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나라의 영향력이 워낙 커서, 오늘날 중국의 가장 큰 민족은 스스로를 '한족'이라고 부르고, 중국의 글자도 '한자(漢字)'라고 부른답니다. 병사들은 살기 위해 미친 듯이 싸우며 20만 대군의 파도 같은 공세를 필사적으로 받아냈습니다. 그 사이 미리 산속에 숨겨둔 한신의 날랜 기병대가 텅 빈 조나라 진영에 몰래 난입해 모든 깃발을 붉은 한나라 깃발로 꽂아버렸습니다. 돌아갈 본진이 털렸다고 착각한 조나라 대군이 심리적으로 완전히 붕괴되면서 한신은 기적 같은 전술적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기원전 202년

해하 전투 (사면초가)

초한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숨 막히는 최후의 결전입니다. 천재 전략가 한신이 총지휘하는 거대한 한나라 연합군은 마침내 굶주리고 지친 항우의 남은 부대를 해하의 협곡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한신은 '십면매복'이라는 겹겹이 에워싸는 그물 같은 진형을 펼쳐, 항우의 결사적인 포위망 돌파를 묵사발 냈습니다. 밤이 되자 한신은 가장 뼈아픈 심리전을 지시하여, 사방에서 초나라 고향 노래를 구슬프게 부르게 했습니다(이것이 '사면초가 - 해하 전투에서 한나라 군대가 사방에서 초나라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하여, 초나라 병사들이 고향이 함락된 줄 알고 사기를 완전히 잃게 만든 심리전 전술입니다. 오늘날에는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극단적으로 고립된 위기 상태'를 뜻하는 사자성어로 쓰이고 있습니다.'입니다). 굳게 믿었던 고향마저 이미 한나라에 점령당했다고 착각한 초나라 병사들은 일말의 전의마저 잃고 눈물을 흘리며 탈영해 흩어졌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항우는 기병 800기를 이끌고 최후의 포위를 뚫고 죽기 살기로 질주했으나, 결국 오강에 이르러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깨닫고 장렬하게 스스로 목을 베어 생을 마감했습니다.

예술 및 유산

항우

항우

미상, 청나라(1644-1912)

유방

유방

미상, 청나라(1644-1912)

한신

한신

상관주, 1921

사기(史記)

사기(史記)

사마천, 기원전 94년경

🏛️ 중국과 일본에 옛 판본과 사본 소장

역사가는 벌을 받은 장군을 변호하다 몸을 상하는 형벌을 받았고, 아버지가 시작한 책을 끝내려고 치욕을 견디며 살았다. 그는 승자인 유방뿐 아니라 패자인 항우에게도 따로 한 편을 내주었다. 홍문의 연회, 해하의 마지막 노래처럼 이 전쟁의 유명한 장면은 거의 다 그의 책에서 나왔다.

패왕별희

패왕별희

경극 배우들, 특히 메이란팡, 20세기 초에 지금의 형태로 정착

🏛️ 베이징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공연

중국 연극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포위된 항우가 적진에서 들려오는 초나라 노래를 듣고 고향 사람들이 이미 상대편에 넘어갔음을 깨닫는다. 곁을 지키던 우희는 칼춤을 추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여기서 사방이 초나라 노래라는 뜻의 사면초가라는 말이 나왔다.

장기판의 초하한계(楚河漢界)

장기판의 초하한계(楚河漢界)

-, 송나라 이후 굳어진 장기판 형태

🏛️ 중국과 동아시아에서 두는 놀이

중국 장기판 한가운데에는 초나라의 강, 한나라의 경계라고 적힌 빈 띠가 있다. 두 세력이 운하를 기준으로 천하를 나누기로 한 휴전을 기억하는 표시인데, 그 약속은 몇 달 만에 깨졌다. 2천 년도 더 전에 끝난 전쟁이 지금도 매일 밥상 위에서 다시 벌어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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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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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가 거록 전투에서 병사들에게 물러설 곳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한 극단적인 전술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