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은 한나라의 창립자이자 초대 황제입니다. 평민 가정에서 태어나 작은 마을의 정장(경찰)으로 일하다가 진나라에 대항하는 반란군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의 라이벌인 항우처럼 무예가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훌륭한 정치력과 인재를 알아보는 비상한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는 장량, 소하, 한신과 같은 뛰어난 인재들을 잘 활용한 것이 자신의 성공 비결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초한전쟁 동안 유방은 항우에게 수많은 패배를 겪었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아 점차 더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해하 전투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황제가 된 후, 그는 400년 이상 지속되며 중국의 문화와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칠 한나라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천하를 통일하고 황제가 된 직후, 유방은 자신의 개국 공신들이 가진 거대한 영토와 막강한 사병 병력을 극도로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방 스스로가 밑바닥 평민에서 시작해 가장 높은 황제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막강한 힘을 가진 다른 공신들 역시 언제든 반란을 일으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깊은 콤플렉스와 의심증이 싹튼 것입니다. 이제 막 세워진 제국의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완성하고 왕조를 안정시키기 위해, 전쟁 중에는 너무도 필요했던 한신, 팽월, 영포 등의 거대 군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해야만 했습니다.
숙청 과정에서는 유방의 아내 여태후(여황후)의 치밀하고 잔혹한 계획이 돋보였습니다. 유방이 자리를 비운 사이 여태후가 함정을 파서 개국 1등 공신이었던 천재 대장군 한신을 궁궐로 유인해 처형했습니다. 억울하게 끌려간 한신이 '사냥할 토끼가 다 죽고 없어지면 곧바로 쓸모없어진 사냥개를 끓는 물에 삶아 먹는다'라며 피눈물로 탄식했고, 여기서 바로 그 유명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했습니다. 이는 전쟁 때는 피를 나누는 의리를 보여주던 유방 부부가 막상 권력을 손에 쥐자 왕조를 지키기 위해 공신들을 가장 비정하게 내버리는 냉혹한 통치자로 돌변했음을 상징하는 비극적 결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