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지도
글꼴 크기
언어
테마

필리프 2세

프랑스 국왕

프랑스 1165년 ~ 1223년 (나이: 58세)

생애

존엄왕 필리프(Philippe Auguste)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필리프 2세는 중세 프랑스의 왕권을 비약적으로 강화하고 제국의 기틀을 다진 가장 성공적인 프랑스 국왕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뛰어난 정치가이자 책략가로서, 프랑스 왕실의 직할 영토를 대폭 확장하고 프랑스 서부를 차지하고 있던 잉글랜드 앙주 왕가(플랜태저넷 왕조)의 세력을 몰아내는 것을 평생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십자군 원정과 리처드와의 대립

1187년 예루살렘의 함락 소식이 전해지자, 필리프 2세는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잉글랜드의 사자심왕 리처드 1세와 손을 잡고 제3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습니다. 두 왕은 서로 깊이 불신했으나, 성지로 가기 위해 바닷길을 통해 협력했고 마침내 1191년 요충지인 아크레 공성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필리프 2세는 대형 공성 투석기를 배치하여 성벽을 격파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했습니다.

질병과 갑작스러운 귀국 결정

그러나 아크레를 점령한 기쁨도 잠시, 전리품의 분배와 예루살렘 왕국의 왕위 계승 후보(리처드는 기 드 루시냥을, 필리프는 콘라드를 지지함)를 둘러싸고 리처드 1세와 심각한 정치적 대립을 겪었습니다. 게다가 이질로 추정되는 심각한 풍토병에 걸려 머리카락과 손톱이 빠지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리처드가 성지에 묶여 있는 사이 고국의 영토를 단단히 다지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필리프 2세는 아크레 함락 직후 군대의 일부만 남겨둔 채 서둘러 프랑스로 귀국했습니다.

프랑스의 황금기를 열다

귀국한 필리프 2세는 리처드 1세가 귀국길에 포로로 잡혀 있는 틈을 타 잉글랜드령 영토를 적극적으로 빼앗았으며, 리처드의 동생 존 왕을 상대로 심리전과 영토 침공을 병행했습니다. 결국 1214년 부빈 전투에서 신성 로마 제국과 잉글랜드의 대규모 연합군을 대파하며 프랑스를 서유럽 최고의 강력한 중앙 집권형 국가로 재탄생시켰습니다. 1223년 그가 세상을 떠날 무렵, 프랑스는 봉건 영주들이 쪼개져 다스리던 약한 나라에서 강력한 국왕 중심의 초강대국으로 변모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