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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년 – 651년

정통 칼리프국의 정복 전쟁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정통 칼리프국 -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세워진 이슬람의 첫 번째 칼리프 국가로, 네 명의 '정통' 칼리프들에 의해 통치되었습니다. 중동, 북아프리카, 페르시아에 걸친 급격한 영토 확장을 이루어냈습니다.이 이국을 상대로 벌인 놀라운 속도의 정복 전쟁입니다. 불과 수십 년 만에 당시의 두 강대국이었던 비잔티움 제국 -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천 년 넘게 로마 제국을 계승한 중세 제국입니다. 1453년 멸망할 때까지 기독교와 로마법의 수호자이자 고대 지식의 보존자로 역사에 남았습니다.사산 제국 - 사산 제국은 이슬람 정복 이전의 마지막 페르시아 제국입니다. 224년 아르다시르 1세가 건국하여 이란의 전통과 조로아스터교를 부흥시켰으며, 로마와 함께 초강대국으로 군림했습니다.를 격파하고 레반트 - 동지중해 연안의 넓은 지역을 가리키는 역사 지리적 용어로, 오늘날의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및 튀르키예 일부를 포함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수스 전투 후 티레와 가자 같은 주요 도시를 점령하며 이 지역을 확보했습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서아시아의 역사적 지역입니다. 그리스어로 '두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메르, 아카드,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등 인류 초기의 문명들이 탄생해 '문명의 요람'이라고도 불립니다., 페르시아 전역을 장악했습니다.

위치중동, 북아프리카, 페르시아 - 사산 제국은 이슬람 정복 이전의 마지막 페르시아 제국입니다. 224년 아르다시르 1세가 건국하여 이란의 전통과 조로아스터교를 부흥시켰으며, 로마와 함께 초강대국으로 군림했습니다.
교전국정통 칼리프국 -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세워진 이슬람의 첫 번째 칼리프 국가로, 네 명의 '정통' 칼리프들에 의해 통치되었습니다. 중동, 북아프리카, 페르시아에 걸친 급격한 영토 확장을 이루어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 -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천 년 넘게 로마 제국을 계승한 중세 제국입니다. 1453년 멸망할 때까지 기독교와 로마법의 수호자이자 고대 지식의 보존자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사산 제국 - 사산 제국은 이슬람 정복 이전의 마지막 페르시아 제국입니다. 224년 아르다시르 1세가 건국하여 이란의 전통과 조로아스터교를 부흥시켰으며, 로마와 함께 초강대국으로 군림했습니다.

전개 과정

632년 예언자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난 후, 정통 칼리프국 -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세워진 이슬람의 첫 번째 칼리프 국가로, 네 명의 '정통' 칼리프들에 의해 통치되었습니다. 중동, 북아프리카, 페르시아에 걸친 급격한 영토 확장을 이루어냈습니다.은 전례 없는 팽창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세계의 두 중심이었던 비잔티움 제국 -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천 년 넘게 로마 제국을 계승한 중세 제국입니다. 1453년 멸망할 때까지 기독교와 로마법의 수호자이자 고대 지식의 보존자로 역사에 남았습니다.사산 제국 - 사산 제국은 이슬람 정복 이전의 마지막 페르시아 제국입니다. 224년 아르다시르 1세가 건국하여 이란의 전통과 조로아스터교를 부흥시켰으며, 로마와 함께 초강대국으로 군림했습니다.는 방금 막 기나긴 전쟁을 끝낸 상태였죠. 두 거대 제국은 지쳐 있었고 내부적으로도 혼란스러웠기에, 강력한 신념과 기동력을 갖춘 이슬람 군대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쪽에서는 이슬람 군대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가로질러 나아갔습니다. 636년 야르무크 전투 에서의 대승으로 비잔티움군은 소아시아로 물러났고, 레반트 - 동지중해 연안의 넓은 지역을 가리키는 역사 지리적 용어로, 오늘날의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및 튀르키예 일부를 포함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수스 전투 후 티레와 가자 같은 주요 도시를 점령하며 이 지역을 확보했습니다. 지역은 칼리프국의 땅이 되었습니다. 637년 예언자의 도시 예루살렘이 항복했고, 곧이어 암르 이븐 알 아스 - 이집트 정복을 이끌고 북아프리카 초기 이슬람 통치의 기반을 닦은 정통 칼리프국 장군입니다. 장군이 이집트로 진격해 642년까지 바빌론 요새 - 현대 카이로 근처 나일강 삼각주에 위치했던 거대한 비잔티움 제국의 요새입니다. 641년, 오랜 포위 끝에 이 요새가 함락된 것은 이슬람의 이집트 정복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알렉산드리아 - 기원전 331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집트에 건설한 주요 도시입니다. 헬레니즘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 중 하나로 빠르게 성장했으며,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파로스 등대와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가 된 웅장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 유명했습니다.를 모두 점령했습니다.

동쪽의 사산 제국와 벌인 전쟁은 더욱 극적이었습니다. 636년 카디시야 전투 라는 거대한 충돌이 있었죠. 페르시아군은 거대한 전투 코끼리와 무거운 갑옷으로 무장했지만, 아랍 군대는 이들을 격파하고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는 이듬해 페르시아의 수도인 크테시폰 - 티그리스 강 동쪽 기슭에 위치했던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수도입니다. 637년 정통 칼리프국 군대에 의해 함락되면서 페르시아의 메소포타미아 통치 중심지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이 함락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페르시아의 중앙 집권 체제는 642년 '승리 중의 승리'라 불리는 니하반드 전투 에서 사실상 무너졌습니다. 651년 야즈데게르드 3세가 사망하며 사산 왕조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광대한 페르시아 영토를 완전히 장악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특히 험준한 산맥에 자리 잡은 타바리스탄 - 카스피해 남쪽 연안의 산악 지대입니다. 아랍 정복에 맞선 사산 왕조 저항의 핵심 근거지였으며, 사산 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100년 넘게 현지 조로아스터교 왕조들의 통치 아래 사실상의 독립을 유지했습니다. 같은 지역은 이후 100년 넘게 독립을 유지하며 저항을 이어갔습니다.

이 정복 전쟁은 단순히 땅을 넓힌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종교와 언어, 그리고 행정 체계가 중동 전역에 뿌리내리기 시작했지요. '우마르의 서약 - 예루살렘이 항복한 후 칼리프 우마르와 소프로니오스 총대주교 사이에 맺어진 평화 조약입니다. 이슬람 제국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서약 내용은 기독교인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교회를 파괴하지 않으며, 종교의 자유를 허락한다는 것이었죠. 그 대신 기독교인들은 '지즈야'라는 특별한 세금을 내고 제국에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이렇듯 당시로서는 놀랍게도 다른 종교를 존중해주었기 때문에, 초창기 이슬람 제국은 여러 민족이 섞여 있어도 평화롭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과 같은 초기의 조약들을 통해 서로 다른 민족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덕분에 이 거대한 제국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주요 사건

636년

야르무크 전투

📍야르무크 강 (지도 보기)

전투 전, 비잔티움 제국 -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천 년 넘게 로마 제국을 계승한 중세 제국입니다. 1453년 멸망할 때까지 기독교와 로마법의 수호자이자 고대 지식의 보존자로 역사에 남았습니다.은 아랍인들을 시리아에서 몰아내기 위해 거대한 군대를 모았습니다. 레반트 - 동지중해 연안의 넓은 지역을 가리키는 역사 지리적 용어로, 오늘날의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및 튀르키예 일부를 포함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수스 전투 후 티레와 가자 같은 주요 도시를 점령하며 이 지역을 확보했습니다. 지역의 주도권을 두고 두 제국이 충돌하며 야르무크 강가에서 6일 동안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죠. 전설적인 지휘관 칼리드 이븐 알 왈리드 - 칼리드 이븐 알 왈리드는 쿠라이시 부족 출신으로 초기에는 예언자 무함마드에 맞서 싸웠으며, 특히 우후드 전투에서 탁월한 기병 돌격으로 전세를 뒤집었습니다.는 모래폭풍이 부는 틈을 타 지형을 이용해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비잔티움군을 험준한 절벽으로 몰아넣는 기막힌 전술을 펼쳤습니다. 이 승리 이후 비잔티움 제국은 레반트 지역을 영원히 잃게 되었고, 칼리프국은 시리아 전역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과정통 칼리프국 승리
636년

카디시야 전투

📍이라크 카디시야 (지도 보기)

사산 제국 - 사산 제국은 이슬람 정복 이전의 마지막 페르시아 제국입니다. 224년 아르다시르 1세가 건국하여 이란의 전통과 조로아스터교를 부흥시켰으며, 로마와 함께 초강대국으로 군림했습니다.은 제국의 심장부였던 이라크로 진격하는 아랍 군대를 막으려 했습니다. 페르시아의 로스탐 장군이 거대한 전투 코끼리 부대와 함께 나타나면서 4일 동안의 처절한 싸움이 시작되었죠. 사드 이븐 아비 와까스 - 카디시야 전투를 포함해 사산 제국에 대한 핵심 승리를 이끈 초기 이슬람 지휘관입니다.가 이끄는 칼리프국 군대는 처음 보는 코끼리들에 고생했지만, 코끼리의 코와 눈을 공격해 무력화시키는 법을 찾아내며 승기를 잡았습니다. 로스탐 장군이 전사하고 페르시아군이 패주하면서, 수도 크테시폰 - 티그리스 강 동쪽 기슭에 위치했던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수도입니다. 637년 정통 칼리프국 군대에 의해 함락되면서 페르시아의 메소포타미아 통치 중심지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으로 가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는 페르시아 정복의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결과정통 칼리프국 승리
637년

예루살렘 항복

📍예루살렘 (지도 보기)

야르무크 전투 이후 성스러운 도시 예루살렘은 완전히 고립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수장인 소프로니오스 총대주교는 항복을 결정했지만, 오직 칼리프 본인에게만 도시의 열쇠를 넘겨주겠다고 했죠. 칼리프 우마르는 검소한 차림으로 메디나에서 직접 찾아와 그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도시 사람들의 생명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우마르의 서약 - 예루살렘이 항복한 후 칼리프 우마르와 소프로니오스 총대주교 사이에 맺어진 평화 조약입니다. 이슬람 제국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서약 내용은 기독교인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교회를 파괴하지 않으며, 종교의 자유를 허락한다는 것이었죠. 그 대신 기독교인들은 '지즈야'라는 특별한 세금을 내고 제국에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이렇듯 당시로서는 놀랍게도 다른 종교를 존중해주었기 때문에, 초창기 이슬람 제국은 여러 민족이 섞여 있어도 평화롭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을 맺었습니다. 이 사건은 칼리프국이 다른 종교를 존중하고 정의롭게 통치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예루살렘이 모두의 성지로 보존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637년

크테시폰 공방전

📍페르시아 수도 크테시폰 (지도 보기)

카디시야 전투의 승리로 기세를 올린 칼리프국 군대는 페르시아의 찬란한 수도 크테시폰으로 향했습니다. 티그리스 - 티그리스강은 유프라테스강과 나란히 흐르는 서아시아의 대표적인 강입니다. 물과 이동로, 비옥한 땅을 제공했기 때문에 티그리스 강변의 셀레우키아 같은 중요한 도시들이 이 강을 따라 성장했습니다. 강이 앞길을 막고 있었지만, 용감한 아랍 군대는 말을 타고 강물을 건너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죠. 이를 본 사산 왕조의 왕족들은 화려한 '백색 궁전'을 뒤로하고 고원 지대로 도망쳤습니다. 풍요로운 대도시 크테시폰을 차지한 칼리프국은 엄청난 보물을 얻게 되었고, 페르시아의 메소포타미아 -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서아시아의 역사적 지역입니다. 그리스어로 '두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메르, 아카드,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등 인류 초기의 문명들이 탄생해 '문명의 요람'이라고도 불립니다. 통치권은 사실상 소멸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정통 칼리프국 승리
640년

헬리오폴리스 전투

📍이집트 헬리오폴리스 (지도 보기)

칼리프국은 풍요로운 곡창 지대인 이집트로 눈을 돌렸습니다. 비잔티움군은 헬리오폴리스 - 헬리오폴리스는 그리스어로 '태양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고대 이집트의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도시 중 하나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이곳을 이우누(Iunu)라고 불렀으며, 태양신 라(Ra)를 모시는 신앙의 중심지였습니다. 훗날 640년에 벌어진 이슬람의 이집트 정복 전쟁 당시, 이곳은 '헬리오폴리스 전투'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암르 이븐 알 아스가 이끄는 정통 칼리프국 군대가 비잔티움 군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죠. 이 승리로 이집트에 있던 비잔티움 제국의 주력 부대가 무너지면서, 아랍 군대는 이집트 전역을 장악할 수 있는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에 강력한 군대를 집결시켜 이들을 막으려 했죠. 암르 이븐 알 아스 - 이집트 정복을 이끌고 북아프리카 초기 이슬람 통치의 기반을 닦은 정통 칼리프국 장군입니다. 장군은 수적으로 불리했지만, 기병대의 일부를 몰래 숨겨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양쪽에서 덮치는 '협공 작전'으로 비잔티움군을 궤멸시켰습니다. 살아남은 비잔티움군은 알렉산드리아 - 기원전 331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집트에 건설한 주요 도시입니다. 헬레니즘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 중 하나로 빠르게 성장했으며,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파로스 등대와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가 된 웅장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 유명했습니다. 성벽 안으로 숨어들었고, 이 승리로 나일강 삼각주 지역은 사실상 칼리프국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결과정통 칼리프국 승리
642년

알렉산드리아 항복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지도 보기)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의 가장 빛나는 보석이자 비잔티움 해군의 핵심 기지였습니다. 하지만 긴 포위 공격이 이어지고 본국의 지원도 끊기자, 도시는 642년에 마침내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마지막 비잔티움 병사가 철수하면서 이집트에서 1,000년 넘게 이어져 온 그리스-로마 시대가 막을 내렸죠. 이슬람 제국은 알렉산드리아 대신 내륙에 있는 푸스타트 - 641년 암르 이븐 알 아스가 건설한 이슬람 통치 하 이집트의 첫 번째 수도입니다. 이후 현대의 카이로로 통합되었습니다.(고대 카이로)를 새로운 중심으로 삼았고, 이집트의 풍부한 문화와 경제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며 새로운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642년

니하반드 전투

📍페르시아 니하반드 (지도 보기)

나라를 되찾으려는 사산 제국은 니하반드에 마지막으로 남은 모든 군사력을 긁어모았습니다. 아랍인들을 메소포타미아로 다시 밀어내기 위한 최후의 일격이었죠. 치열한 접전 끝에 칼리프국 군대가 완승을 거두었고, 이 전투는 '승리 중의 승리'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제국의 주력군이 완전히 궤멸되면서 사산 제국의 중앙 정부는 사실상 힘을 잃었으며, 이후 페르시아의 각 지방들도 하나둘씩 칼리프국의 지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정통 칼리프국 승리
휴전 / 공백기 (5년)
647년

수페툴라 전투

📍북아프리카 수페툴라 (지도 보기)

이슬람의 정복은 북아프리카 더 깊숙이 나아갔습니다. 당시 비잔티움 총독이었던 그레고리오스가 본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며 혼란스러운 틈을 타 아랍 군대가 진격한 것이죠. 압둘라 이븐 사드 - 압둘라 이븐 사드는 7세기에 활동한 정통 칼리프국 지휘관이자 이집트 총독으로, 북아프리카 원정을 이끈 인물입니다.가 이끄는 칼리프국 군대는 수페툴라 - 오늘날 튀니지의 스베이틀라 지역에 있었던 고대 로마 도시입니다. 그레고리오스 총독이 다스리던 아프리카의 중심지였으며, 647년 역사적인 수페툴라 전투가 일어난 장소입니다. 전투에서 승리한 아랍 군대는 막대한 전리품을 받은 뒤 다시 이집트로 돌아갔습니다.에서 그의 군대를 격파했습니다. 승리 후 아랍인들은 엄청난 양의 금과 보물을 공물로 받은 뒤, 본국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일단 이집트로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이 전투로 비잔티움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훗날 이슬람이 마그레브 전역으로 뻗어 나가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결과정통 칼리프국 승리
휴전 / 공백기 (4년)
651년

사산 제국의 멸망

📍메르브 (현대 투르크메니스탄) (지도 보기)

사산 제국의 마지막 황제 야즈데게르드 3세가 도주 끝에 651년 메르브 근처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로써 400년 넘게 이어진 왕조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타바리스탄 - 카스피해 남쪽 연안의 산악 지대입니다. 아랍 정복에 맞선 사산 왕조 저항의 핵심 근거지였으며, 사산 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100년 넘게 현지 조로아스터교 왕조들의 통치 아래 사실상의 독립을 유지했습니다. 같은 산악 지대나 외곽 지역의 귀족들은 이후로도 수십 년간 저항하거나 자치권을 유지했습니다. 페르시아 영토가 완전히 통합되는 과정은 매우 오래 걸렸으며, 이 기간 동안 고대 페르시아의 문화와 새로운 이슬람 신앙이 서서히 융합되어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예술 및 유산

사마르칸트 쿠파체 쿠란

사마르칸트 쿠파체 쿠란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필경사들, 8~9세기, 전통적으로는 칼리프 우스만과 연결

🏛️ 하스트 이맘 도서관, 타슈켄트, 우즈베키스탄

사슴 가죽 양피지에 굵고 각진 쿠파체로 쓴 아주 큰 쿠란이다. 모두가 같은 본문을 외우도록 제3대 칼리프가 만들게 한 사본 가운데 하나라고 전해지지만, 학자들은 현존하는 낱장을 그보다 뒤로 보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본문을 확정한 일은 이 시기가 남긴 오래가는 변화였다.

아므르 이븐 알아스 모스크

아므르 이븐 알아스 모스크

-, 642년 창건, 이후 여러 차례 재건

🏛️ 올드 카이로, 이집트

아프리카에 처음 세워진 모스크로, 훗날 카이로가 되는 주둔지 푸스타트에 지어졌다. 처음에는 흙벽돌과 야자나무 기둥으로 만든 네모난 건물이었고 첨탑도 없었다. 그 첫 건물은 거의 남지 않았지만, 이 자리에서는 1,400년 가까이 예배가 이어지고 있다.

아랍-사산 은화

아랍-사산 은화

옛 페르시아 지역 조폐소의 장인들, 7세기

🏛️ 대영박물관 등 화폐 소장처

새 지배자들이 옛 페르시아 주형을 그대로 써서 찍은 은화다. 앞면에는 왕관을 쓴 사산 왕의 얼굴, 뒷면에는 불의 제단이 남아 있고 가장자리에 짧은 아랍어 문구만 더해졌다. 장사는 정권이 바뀐다고 멈출 수 없었기에, 제국은 아주 작은 부분부터 조금씩 주인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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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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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두 강대국이었지만, 놀라운 속도의 정통 칼리프 군대에게 불과 수십 년 만에 무너진 두 나라는 어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