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2년 예언자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난 후, 정통 칼리프국은 전례 없는 팽창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세계의 두 중심이었던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 제국는 방금 막 기나긴 전쟁을 끝낸 상태였죠. 두 거대 제국은 지쳐 있었고 내부적으로도 혼란스러웠기에, 강력한 신념과 기동력을 갖춘 이슬람 군대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쪽에서는 이슬람 군대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가로질러 나아갔습니다. 636년 야르무크 전투 에서의 대승으로 비잔티움군은 소아시아로 물러났고, 레반트 지역은 칼리프국의 땅이 되었습니다. 637년 예언자의 도시 예루살렘이 항복했고, 곧이어 암르 이븐 알 아스 장군이 이집트로 진격해 642년까지 바빌론 요새와 알렉산드리아를 모두 점령했습니다.
동쪽의 사산 제국와 벌인 전쟁은 더욱 극적이었습니다. 636년 카디시야 전투 라는 거대한 충돌이 있었죠. 페르시아군은 거대한 전투 코끼리와 무거운 갑옷으로 무장했지만, 아랍 군대는 이들을 격파하고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는 이듬해 페르시아의 수도인 크테시폰이 함락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페르시아의 중앙 집권 체제는 642년 '승리 중의 승리'라 불리는 니하반드 전투 에서 사실상 무너졌습니다. 651년 야즈데게르드 3세가 사망하며 사산 왕조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광대한 페르시아 영토를 완전히 장악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특히 험준한 산맥에 자리 잡은 타바리스탄 같은 지역은 이후 100년 넘게 독립을 유지하며 저항을 이어갔습니다.
이 정복 전쟁은 단순히 땅을 넓힌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종교와 언어, 그리고 행정 체계가 중동 전역에 뿌리내리기 시작했지요. '우마르의 서약'과 같은 초기의 조약들을 통해 서로 다른 민족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덕분에 이 거대한 제국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