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와 싸우기 위해 동방에 머물던 발렌스 황제는 고트족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발칸반도로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그는 378년 여름 하드리아노폴리스에 도착했습니다. 서방 황제인 조카 그라티아누스가 지원군이 오고 있으니 기다리라고 경고했지만, 발렌스는 승리의 영광을 홀로 차지하려는 생각에 즉시 고트족 진영을 공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는 무더운 8월의 어느 날 시작되었습니다. 더위 속에 긴 행군을 하느라 지치고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로마 보병들은 처음에는 고트족의 마차 진영을 밀어붙였습니다. 그러나 식량을 구하러 나가 있던 고트족 기병대가 갑자기 돌아와 로마군의 측면을 강타했습니다. 로마군의 전열은 무너졌고, 이어진 학살 속에서 로마군의 3분의 2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발렌스 황제 본인도 전사했으며, 그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드리아노폴리스의 패배는 역사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처음으로 게르만 부족이 로마 땅에서 로마 야전군을 격파하고 그곳에 계속 머물게 된 것입니다. 새로 즉위한 테오도시우스 1세는 결국 382년 고트족이 자치권을 가진 민족으로서 제국 내에 정착하는 것을 허용하는 조약을 맺어야 했습니다. 이는 추후 서로마 제국이 분열되고 멸망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비록 사건은 동로마에서 일어났지만, 과거에는 패배한 이민족을 노예로 팔거나 흩어지게 했던 것과 달리, 이번 조약은 고트족이 자신들의 지도자 아래 무장한 채로 제국 영토 내에 정착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이 고트족은 서로마로 이동해 서고트 왕국을 세웠고, 이 '무장 정착' 모델은 다른 부족들에게도 적용되어 서로마 제국의 영토가 분할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