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스파 총사령관이자 타보르파 지도자
"우리는 결코 약탈을 위해 칼을 들지 않았다. 하나님의 진리와 자유로운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 전진할 뿐이다."— 제국 영내로 원정을 떠나며 남긴 성명서
대 프로코프(c. 1380~1434, 프로코프 홀리)는 보헤미아의 가톨릭 사제 출신 군사령관이자 정치가로, 얀 지슈카 사후 후스파 급진파(타보르파)와 연합군을 이끌며 제3차, 4차, 5차 반후스 십자군을 차례로 궤멸시킨 지도자입니다.
프로코프는 1380년경 프라하의 부유한 시민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훌륭한 교육을 받고 가톨릭 사제로 서품되었으나, 얀 후스의 설교에 깊은 감화를 받고 교회의 부패에 저항하는 개혁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사제 신분이었기 때문에 머리를 삭발하여 '홀리(Holý, 삭발한 자라는 뜻)'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비록 사제라는 종교적 계율 때문에 직접 손에 칼을 쥐고 사람을 베지는 않았지만, 지휘봉을 잡고 전황을 통찰하는 군사적 재능은 얀 지슈카에 필적했습니다.
1424년 얀 지슈카가 사망하자, 프로코프는 후스파의 가장 강력한 분파인 타보르파의 총사령관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지슈카가 확립한 마차 요새(바겐부르크)와 화약 무기 전술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1426년 우스티나드라벰 전투에서 작센의 정예 기사단을 상대로 역사적인 대승을 거두었고, 1427년 타호프 전투에서도 제4차 십자군을 완파하며 보헤미아 전역에서 확고한 통제권을 쥐었습니다.
프로코프는 보헤미아 땅에 갇혀 방어전만 치르는 소극적 전략을 버리고, 1427년부터 1433년까지 '아름다운 원정(Spanilé jízdy)'이라 불린 대규모 역침공을 감행했습니다. 후스파 군대를 이끌고 독일의 작센, 바이에른, 프랑켄, 실레시아, 오스트리아, 심지어 발트해 연안까지 진격하여 적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막대한 전리품과 식량을 확보했습니다. 1431년 교황청이 소집한 제5차 십자군 4만 명이 보헤미아를 침공했을 때 벌어진 도마쥘리체 전투에서는, 프로코프의 군대가 마차를 몰고 다가오며 부르는 찬송가 《너희 하느님의 전사들아》 노랫소리에 질려 십자군이 칼 한 번 섞지 못하고 패주하는 기적 같은 승리를 일궈냈습니다.
군사적으로 승리한 프로코프는 1433년 바젤 공의회에 보헤미아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하여 유창한 라틴어 웅변으로 후스파의 교리를 당당히 변호했습니다. 그러나 귀국 후, 교회와 타협하여 안정을 되찾으려는 보헤미아 온건파 귀족(우트라퀴스트)들과 철저한 신앙 혁명을 요구하는 급진파(타보르파) 사이에 내분이 격화되었습니다. 결국 1434년 5월 30일 벌어진 리파니 전투에서 온건파의 위장 퇴각 전술에 속아 마차 방진이 열리며 십자포화를 맞았습니다. 프로코프는 뚫린 마차 방벽 한가운데서 끝까지 부하들과 함께 항전하다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