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아의 군사령관이자 후스파 총지도자
"적의 수효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정의와 진리를 위해 싸워라."— 후스파 전사들에게 남긴 군율
얀 지슈카(c. 1360~1424)는 보헤미아 왕국의 소귀족 출신 군사령관으로, 후스 전쟁 당시 농민과 평민으로 구성된 후스파 군대를 이끌고 신성 로마 제국과 가톨릭 십자군을 연달아 격파한 명장입니다. 군사사에서 마차 요새(바겐부르크)와 야전 화약 무기를 체계적으로 결합한 최초의 지휘관으로 평가받습니다.
지슈카는 1360년경 남부 보헤미아의 트로츠노프에서 가난한 기사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전투나 사고로 한쪽 눈을 잃어 평생 안대를 차고 다녔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국왕 바츨라프 4세의 궁정 호위병으로 일했고, 유럽 각지의 전장을 누비는 용병으로 활약했습니다. 특히 1410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이 튜턴 기사단을 격파한 유명한 그룬발트 전투에 참전하며 대규모 중장갑 기사들의 장점과 약점을 철저히 관찰했습니다.
1415년 종교개혁가 얀 후스가 화형당한 뒤 보헤미아 전역이 들끓자, 후스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지슈카는 1419년 제1차 프라하 창문 투척 사건을 계기로 후스파 군대의 군사 지도자로 나섰습니다. 당시 후스파 군대는 정식 군사 훈련을 받지 못한 농민과 수공업자가 대부분이었고, 이들이 맞서야 할 상대는 번쩍이는 판금 갑옷과 군마로 무장한 유럽 최정예 기사단이었습니다. 지슈카는 이 절망적인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농사용 마차를 사슬로 엮어 만든 '바겐부르크(마차 요새)'를 창안했습니다. 또한 농민들이 다루던 도리깨에 쇠못을 박아 무기로 바꾸고, 피스탈(핸드캐논)과 호우프니체(경야포) 같은 초기 화약 무기를 마차 틈에 배치해 기사단의 돌격을 완벽하게 분쇄했습니다.
1420년 수도메르시 전투에서 400명의 병력으로 2,000명의 철갑 기사를 물리친 지슈카는 같은 해 비트코프 언덕 전투에서 황제 지기스문트의 제1차 십자군 3만 명을 격퇴하며 프라하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1421년 라비 성을 포위 공격하던 중 날아온 화살에 맞아 남은 한쪽 눈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완전한 시각장애인이 되었음에도 지슈카는 사령관 자리를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하들에게 전장의 지형과 적의 움직임을 소리 내어 보고하게 한 뒤, 타고난 공간 감각과 지형 기억력만으로 군대를 지휘했습니다. 1422년 제2차 십자군과의 네보비디-하브리 전투에서도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지휘하여 황제의 군대를 국경 밖으로 완전히 몰아냈습니다.
지슈카는 1424년 10월 11일, 모라비아 국경의 프르지비슬라프 성을 포위하던 중 진중에서 흑사병에 걸려 숨을 거두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부하들에게 '내가 죽거든 내 가죽으로 북을 만들어라. 그 북소리를 들으면 적들이 여전히 나를 보고 달아날 것이다'라는 비장한 유언을 남겼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후스파 부하들은 아버지를 잃었다며 스스로를 '고아들(Sirotci)'이라 부르며 그의 깃발 아래서 항전을 이어갔습니다. 지슈카는 전 생애에 걸쳐 치른 수십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무패의 사령관으로 역사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