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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카이사르

독재관 및 장군

로마인 기원전 100년 – 기원전 44년 (나이: 56세)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 젤라 전투에서 빠르게 승리한 후 원로원에 보낸 편지에서.

생애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평민을 지지하는 민중파(포풀라레스)와 손을 잡는 영리한 정치적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는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제1차 삼두정치를 결성하여 로마 공화정을 사실상 장악했습니다.
그의 군사적 천재성은 갈리아 전쟁(기원전 58–50년)에서 가장 빛났습니다. 8년 동안 그는 갈리아(현 프랑스와 벨기에) 전역을 정복하여 로마의 국경을 영국 해협과 라인강까지 확장했습니다. 이 원정은 로마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정예 군단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의 커지는 권력을 두려워한 원로원과 옛 동맹 폼페이우스는 군대 해산을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이에 불복하고 기원전 49년, '주사위는 던져졌다(Alea iacta est)'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 루비콘 강을 건너 내전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지중해 전역에서 폼페이우스를 추격했고, 결국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그를 격파했습니다.
독재관이 된 카이사르는 로마를 개조하는 광범위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달력을 개정(율리우스력)하고, 속주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했으며, 퇴역병들에게 토지를 분배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종신 독재관'에 취임하자, 왕정의 부활을 두려워한 원로원 의원들은 공포에 떨었습니다.
결국 기원전 44년 3월 15일(운명의 날), 그는 브루투스와 카시우스가 주도한 암살자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로마를 다시 혼란에 빠뜨렸고, 양자 아우구스투스의 등극과 함께 로마 제국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이름 '카이사르'는 이후 수세기 동안 황제를 뜻하는 칭호(카이저, 차르)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