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1년, 코르불로보다 더 공격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라는 네로의 명을 받고 파견된 파이투스는 오만하게 도착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르메니아를 로마의 속주로 직접 병합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 말을 뒷받침할 군사적 능력은 없었습니다.
서기 62년, 코르불로가 시리아 국경을 방어하는 동안 파이투스는 두 개의 군단을 이끌고 아르메니아로 진입했습니다. 그는 병력을 위험하게 분산시켰고, 적절한 정찰이나 방어 태세를 갖추지 않았습니다. 볼로가세스 1세가 대규모 파르티아군을 이끌고 진격해오자, 파이투스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란데이아 요새에 포위되었습니다.
굶주림과 사기 저하에 시달리던 파이투스는 치욕적인 조건으로 항복했습니다. 로마 군단은 '멍에 밑'을 지나가는 굴욕(복종의 상징)을 겪으며 즉시 아르메니아에서 철수해야 했습니다. 로마로 소환된 그에게 네로는 '네가 너무 겁이 많아 처벌을 기다리다 공포로 죽을까 봐 즉시 용서한다'며 조롱 섞인 사면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