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론물리학자 / 맨해튼 계획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장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사막에서 인류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의 거대한 폭발 빛을 지켜보며 오펜하이머가 마음속에 떠올렸다고 밝힌 고대 산스크리트 서사시 《바가바드 기타》의 구절.
J. 로버트 오펜하이머(J. Robert Oppenheimer, 1904~1967)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극비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를 이끌어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을 탄생시킨 이론물리학자입니다.
미국 뉴욕의 부유한 독일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오펜하이머는 문학과 철학, 외국어에도 능통했던 다재다능한 청년이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를 3년 만에 최우등으로 졸업한 뒤 영국 케임브리지와 독일 괴팅겐 대학교로 유학해 막스 보른 밑에서 당시 막 태동하던 양자역학을 연구하며 23세에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칼텍) 교수로 부임한 그는 분자 물리학부터 양자전기역학, 그리고 거대한 별이 수명을 다해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현상(오늘날 '블랙홀'이라 불리는 개념의 최초 이론적 예측)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구 업적을 남기며 미국 이론물리학의 중심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39년 독일에서 우라늄 핵분열 현상이 발견되자, 나치 독일이 먼저 파괴적인 핵무기를 만들지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승인했습니다. 1942년 군 총책임자인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은 천재적인 직관과 폭넓은 학문적 시야를 겸비한 오펜하이머를 무기 설계 총책임자로 전격 발탁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어린 시절 요양차 머물며 사랑하게 되었던 뉴멕시코주의 외딴 고원 사막 지대인 '로스앨러모스'에 비밀 연구 도시를 세웠습니다. 그는 닐스 보어, 엔리코 페르미, 리처드 파인만 등 개성 강한 수천 명의 세계적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특유의 카리스마와 설득력으로 하나로 묶어 우라늄 포신형 폭탄과 플루토늄 내파형 폭탄 설계를 동시에 완성해 냈습니다. 마침내 1945년 7월 16일 새벽, 뉴멕시코주 알라모고도 사막에서 인류 최초의 핵폭발 실험인 '트리니티(Trinity) 실험'이 성공하여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자, 오펜하이머는 고대 인도의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한 구절인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를 떠올렸다고 회고했습니다.
트리니티 실험 한 달 뒤인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고 전쟁이 끝나자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로서 국민적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핵무기의 끔찍한 살상력을 목격한 그는 깊은 죄책감과 두려움에 휩싸였고, 그해 10월 백악관에서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을 만나 '각하, 제 손에 피가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토로하며 핵무기를 한 국가가 독점하지 말고 국제기구가 공동 통제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냉전이 격화되자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보다 수백 배 강력한 열핵무기(수소폭탄) 개발에 도덕적·전략적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로 인해 군비 확장을 추진하던 정치 세력의 표적이 된 그는 1954년 반공주의(매카시즘) 열풍 속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젊은 시절 좌파 인사들과 교류했다는 이유로 국가 기밀 취급 인가를 박탈당하는 모욕을 겪었습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으로 학문 연구와 강연에 전념하던 그는 1963년 존 F. 케네디 및 린든 B.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원자력위원회 최고 영예인 엔리코 페르미상을 받으며 일부 명예를 회복했고, 1967년 62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이후 2022년 미국 에너지부는 1954년의 보안 인가 박탈 결정이 부당했음을 공식 인정하고 이를 철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