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거병은 서한 시대의 천재적인 군사 전략가이자 대장군 위청의 조카로, 중국 역사상 가장 눈부신 전적을 남긴 젊은 영웅입니다. 그는 불과 17세의 나이에 군대에 투입되어 즉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보병 위주의 전통적인 전술에서 벗어나, 그는 소규모 정예 기병을 활용한 전격전의 대가였습니다. 그는 보급로에 의존하지 않고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하며 흉노의 본거지 깊숙이 침투하여 적을 괴멸시켰습니다.
기원전 121년, 19세의 곽거병은 하서주랑을 정복하기 위한 두 차례의 대규모 원정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기동력을 앞세운 대담한 작전으로 흉노의 왕들을 연이어 격파하고 하서주랑 전역을 한나라의 영토로 편입시켰습니다. 이 승리는 훗날 실크로드의 토대가 되는 서역으로의 길목을 확보하고, 흉노와 남방 강족 간의 연결 고리를 영구적으로 끊어버린 엄청난 전략적 성과였습니다.
나라를 위한 그의 충심은 후대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한 무제가 그의 공로를 치하하며 화려한 저택을 하사하려 하자, 곽거병은 '흉노를 아직 멸하지 못했는데 어찌 집을 생각하겠습니까(흉노미멸 하이가위)?'라는 명언을 남기며 거절했습니다. 이 말은 개인의 안위보다 국가의 안녕을 우선시하는 무인의 자세를 상징하는 문구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젊은 영웅은 원정 도중 얻은 전염병으로 인해 24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죽음을 몹시 슬퍼한 한 무제는 그가 정복한 기련산을 형상화한 거대한 무덤을 만들어 그의 공적을 기렸습니다. 곽거병은 짧은 생애 동안 그 어떤 장군도 이루지 못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으며, 한나라와 북방 유목 민족 간의 역학 관계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어 놓았습니다.